"한쪽은 결혼식장, 한쪽은 장례식장"…배재고 앞에 펼쳐진 '진영 대결'

사회

뉴스1,

2026년 7월 03일, 오후 04:03

2일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 배재고등학교 야구부를 비판하는 근조화환과 응원하는 화환이 놓여 있다. 2026.7.2 © 뉴스1 김성진 기자
"말하자면 한쪽은 결혼식장, 한쪽은 장례식장 같았어요." 3일 오전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을 찾은 70대 여성 A 씨는 학교 앞에 응원 화환과 근조 화환이 나란히 세워져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학부모 입장에서만 보면 아이들이 너무 안 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학생들이 응원할 때 5·18 민주화운동을 사용한 것은 다소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어른들은 유튜브 방송 등에서 더 큰 논란을 일으켜도 계속 활동하지 않느냐"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은 지난달 29일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이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 지역 비하성 응원 구호를 외친 데서 비롯됐다.

이후 학교와 야구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적힌 근조 화환이 배송됐다. 근조 화환에는 '배재고 야구선수단 프로야구채용 배제하라', '민주화운동을 모욕하는 국민에게 민주주의는 과분하다' 등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맞불을 놓듯 응원 화환도 잇따라 등장했다.

이날 오전 배재고 교문 오른편 화단에는 응원 화환 6개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화환 리본에는 '배재고 야구부 화이팅', '어른들이 끝까지 지켜줄게. 자랑스런 아들들아 기죽지 마라', '미래를 겁박하는 어른은 참어른이 아니다', '후배들아 힘내라. 너희는 세상의 등불이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학교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앞서 세워졌던 비판·응원 화환은 전날(2일) 오후 수거됐다. 바닥에는 강동구청장 명의의 '불법 적치물 정비 및 물품 보관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이날 오전 놓인 화환은 일과 시간이 지난 뒤 설치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화환 설치가 확인되면 즉시 철거할 계획"이라며 도로법을 적용 근거로 들었다.

도로법 제74조 1항 제2호에 따르면 도로의 통행이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경우에는 도로관리청이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통행 과정에서 화환이 쓰러지며 주민들이 다칠 가능성이 있어 화환을 철거한다는 설명이다. '수거한 화환은 모두 일정 장소에 보관 중'이라고 구청 관계자는 전했다.

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배재고 앞 화환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인된 민원 건수는 총 497건으로 파악됐다.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 앞에 세워진 화환이 전날(2일) 수거된 뒤 불법적치물 정비 및 물품보관 안내장이 바닥에 붙여진 모습. 2026.7.3 © 뉴스1 강서연 기자

배재고 앞을 지나던 50대 여성은 "정치적인 부분이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많이 우려스럽다"면서 "학생들은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는 만큼 어른들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앞 화환에 대해서는 "어른들의 프레임이 아이들에게 씌워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정치가 교육 현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이날 오전 8시 37분쯤엔 한 시민이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면제해 달라"며 표현의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취지의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앞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지난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배재고에 전국대회 출전정지 6개월의 징계를 의결한 바 있다.

서울교육청 등에 따르면 배재고 측은 학생들이 등하굣길에서 욕설이나 조롱 등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우려해 사복을 착용하고 등교하는 것을 허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어른들이 어른다워야 한다. (맞불 화환은) 아이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의 부끄러운 초상이자 민낯"이라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가 배재고 학생 자체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질 우려에 대해선 "잘못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 등이 필요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계기로 상대를 몰아가는 혐오도 문제가 된다"면서 "이러한 상황도 품격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양비론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번 사안에서 아이들의 행태는 철저하게 조롱과 비하에 관련된 부분"이라면서 "그런데도 이른바 '나쁜' 어른들은 양비론을 내세우며 교문 앞에 양측을 상징하는 화환을 함께 가져다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k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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