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부대' 사건부터 '난민'까지…잘나가는 '기업전문 변호사'의 이중생활

사회

뉴스1,

2026년 7월 06일, 오전 07:00

법무법인 광장 홍석표 변호사가 29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뉴스1 이광호 기자
"올바른 사회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보람, 그게 이유죠." 매각 대금만 조(兆) 단위에 육박하는 대기업 회생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는 대형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퇴근 후에는 이집트 난민, 발달장애인, 6·25 참전 노무자의 조사자료를 붙잡고 밤을 지새운다. 이른바 '돈 되는 사건'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마지막 동아줄 같은 사건들이다.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잘나가는 변호사'의 이중생활, 홍석표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사법연수원 36기)의 이야기다. 그는 정평 난 도산·회생 전문가인 동시에, 개업 이후 16년째 공익변론에 헌신하고 있는 법조인이다. <뉴스1>은 지난달 29일 서울 소공동 광장 사무실에서 홍 변호사를 만났다.

"공익 활동이 제 부전공이죠"
홍 변호사의 주력 분야는 '기업회생'이다. 2010년 광장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한 이후 5건의 관련 논문을 펴내고, 한진해운·LIG건설·STX팬오션 등 굵직한 대기업집단 회생 사건을 담당했다. 2019년에는 세계적인 법률전문지 IFLR1000이 선정하는 '주목할 만한 전문가'(Notable Practitioner)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홍 변호사가 펴낸 책은 장애인 소송 관련 서적이 더 많을 만큼 공익변론에 진심이다. 광장에 합류한 이듬해인 2011년부터 16년째 공익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다. 홍 변호사는 "주된 업무는 기업 소송이지만, 부전공은 공익활동"이라며 "퇴근 후나 주말에 공익변론 서면답변서와 씨름한다"고 웃어 보였다.

수임료를 받지 않는 공익변론이라고 쉬운 소송은 없다. 대다수 공익사건의 상대방은 정부다. 독재 정권의 박해를 피해 한국의 문을 두드린 난민, 공권력에 부당한 피해를 입은 운동선수처럼 국가가 외면한 사건을 다퉈나가야 한다. 홍 변호사는 "공익사건 한 건에 파트너 변호사 2명 등 최소 5명이 붙는 이유"라고 말한다.

8년 전 맡은 '지게부대' 사건이 대표적이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고(故) 정 모 씨는 노무자로 징집돼 제11사단에서 지게로 탄약과 보급품을 나르다 빨치산 토벌 작전에서 총탄에 맞아 전사한 '지게부대원'이었다. 보훈처는 정 씨를 참전유공자로 인정했지만, 국가유공자 등록은 거부했다. 정 씨가 전투 중 사망한 기록이 없다는 이유였다.

정 씨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꼬박 9년이 걸렸다. 홍 변호사는 "(정 씨가) 전투 중 사망했는지, 설령 그렇더라도 노무자를 군인으로 볼 수 있는지 건건이 쟁점이었다"고 회상했다. 홍 변호사는 유족과 함께 국방부와 보훈처를 찾아다니며 내부 자료를 모았고, 2018년 끝내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지게부대원이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은 첫 사례였다.

5일 오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당시 다부동전투에서 산화한 지게부대원들의 애국심과 애향심을 기리는 '다부동전투 참전 주민 위령비 제막식' © 뉴스1 정우용 기자

이집트 난민부터 수영선수 박태환 가처분까지
'난민 문제'도 홍 변호사가 애착을 갖는 공익사건 중 하나다. 난민 수용 문제는 국내에서도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는 뜨거운 감자다. 100건 중 5건도 승소하기 어렵다는 난민 사건을 해결해도 '묻지마 비난'에 시달리기 일쑤다. 그러나 홍 변호사는 "난민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한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홍 변호사의 노력은 지난 2024년 이집트 난민의 '재체포(recycling) 관행'을 우리 법원이 최초로 인정한 판례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집트 엘시시 군부독재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전기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사는 등 박해를 당한 뒤, 2018년 한국을 찾아 난민 신청을 했던 이집트 대학생 A 씨의 사례였다.

법무부는 A 씨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만큼 본국으로 돌아가도 다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없다며 난민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홍 변호사는 미국 국무부와 호주 외무부의 보고서까지 제출하며 "A 씨를 돌려보내면 다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피력했고, 결국 재판부는 "원고가 이집트 정부 아래에서 계속 박해받을 게 자명하다"며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홍 변호사는 "난민 사건을 맡으면 '왜 테러분자를 변호하냐'고 욕도 많이 먹는다"면서도 "한국은 엄연히 난민법을 두고 있고, 박해로부터 난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확고한 신념을 내비쳤다. 실제 A 씨는 이집트에서 약사 자격증을 취득한 고급 인재다. 7년간의 소송을 마치고 현재는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연구개발(R&D)에 힘쓰고 있다.

공익사건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다 보니 유명 사건을 맡은 경우도 있었다. 박태환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의 2016년 리우올림픽 출전 가처분 사건도 그중 하나다. 박 전 선수는 도핑 징계 기간을 마치고도 대한체육회와 대한수영연맹의 '결격조항' 고집으로 올림픽 출전이 막힐 위기에 놓여 있었다.

홍 변호사는 해당 결격조항이 세계반도핑규약이 금지한 추가 제재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퉜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박 전 선수는 극적으로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홍 변호사는 "스포츠 전문 변호사는 아니지만,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 제도와 규정을 바꾸는 것은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며 "밤을 새워가며 변론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법무법인 광장 홍석표 변호사가 29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스1 이광호 기자

자본주의 최전선 '기업 전문 변호사'의 고백
홍 변호사는 개업 이후 공익변론을 한 번도 쉬지 않은 이유로 '자부심과 보람'을 꼽았다. 자칫 뻔하게 보일 수 있는 대답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기업회생과 인수합병(M&A) 사건을 다루며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서 있는 변호사가, 법조인의 길을 택한 이유를 잊지 않으려는 고백처럼 다가왔다.

그는 2년 전 발달장애인 B 씨를 돌보던 활동보조인이 B 씨의 통장과 카드를 가로채고, B 씨가 신고하자 도리어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가 변론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언어발달지연 아동에게 실손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보험사 사건을 맡아 공익변론을 하고 있다.

홍 변호사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 윤리장전을 보면 '변호사는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는 말이 적혀 있어요. 거창한 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의뢰인과 돈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공익변론은 돈과 무관하게 오직 진실만을 말합니다. 변호사의 말 한마디가 신뢰를 갖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과 보람이 공익변론에 나서는 이유죠."

dongchoi89@news1.kr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