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앞에 포켓몬카드를 사기 위한 인파가 몰린 모습. 2026.7.9 © 뉴스1 윤지오 수습기자
이날 매장 오픈을 2시간 앞두고 '오픈런'을 위해 테라스에 도착한 이들은 약 200명. 오픈 시간이 다가와 늦게 합류한 사람들까지 더해지자 줄은 테라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입구 쪽으로 이어졌다.
새벽 2시에 도착해 밤을 지새웠다는 대학생 윤 모 씨(26·남)는 "간밤에 비가 쏟아져 힘들었다"면서도 "오늘은 40번 대로 도착해 카드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희귀 카드는 정가 '4배' 리셀도…"알바보다 나아"
최근 용산 포켓몬 카드샵에서 전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오픈런'은 매일의 일상이 됐다. 랜덤으로 포켓몬 카드가 포장된 팩을 구매해 내용물을 확인하는 '포켓몬 카드깡'이 젊은 세대 위주로 크게 유행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고거래사이트에선 일부 카드와 카드박스가 수만~수십만 원의 웃돈이 붙은 채 거래되고 있다. 전국에 몇 곳 없는 공식 매장인 용산 포켓몬 카드샵은 포켓몬 카드 팩을 정가에 구매할 수 있는 대표 판매처다. 이날(9일) 오픈런에 유독 사람이 몰린 것도 전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희귀 상품인 '151' 카드박스가 입고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희귀 카드가 들어 있는 카드팩은 정가의 몇 배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윤 씨는 "5만 원짜리 '151' 박스는 20만 원 정도에 리셀(재판매)된다"며 "공식샵이 아니면 웃돈을 너무 많이 줘야 해서 다들 여기로 몰린다"고 말했다.
실제 오래전부터 카드를 모아왔다는 수집가들은 최근의 열기를 달갑지만은 않게 바라봤다.
오전 9시 30분쯤 여자 친구와 함께 오픈런 현장을 찾아 익숙한 듯 돗자리를 펼치던 대학생 이 모 씨(23·남)는 "작년부터 수집을 시작했는데 (오픈런 행렬이) 좋지는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리셀가가 많이 올라 취미로 모으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하기 힘들어졌다"며 "오늘도 오면서는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줄에는 대학생뿐 아니라 중장년층과 노년층도 적지 않았다. 한 70대 남성은 "보통 9시 전에 현장을 찾아 줄을 선다"며 "당근에 팔면 하루 아르바이트보다 더 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매장 문이 열린 뒤에도 길게 늘어선 행렬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오전 10시 30분 입장이 시작되자 대기자들은 입장 스태프를 따라 8층 매장으로 이동해 태블릿으로 대기 등록을 했다. 대기번호 등록을 위한 줄은 8층 매장 복도를 가득 채우고 야외 풋살장까지 이어졌다.
입장 스태프는 "입장 등록만 정오 가까이 이루어지고, 입장 자체는 저녁까지 진행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오전 12시 기준 대기번호는 310번을 기록했다.
리셀 플랫폼 '크림' 갈무리
포켓몬카드 매력은 '도파민'…"구매 과정도 즐기는 경험 욕구"
현장에 도착해 유독 긴 대기 줄을 목격하고 돌아서는 이들도 생겼다. 싱가포르에서 온 20대 여행객 조이스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300여 명이 우산을 쓴 채 늘어선 장면을 마주하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오빠가 한글판 포켓몬카드를 갖고 싶어 해 어제 오후에도 왔지만 입장 마감이었다"며 "오늘은 오픈 시간에 맞춰 왔는데 이런 풍경은 처음 본다"고 연신 감탄했다. 건물 안쪽에서 테라스를 바라보던 70대 남성은 "매일 10시쯤 도착하는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돌아갈까 한다"며 "평소엔 200명 정도까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픈런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포켓몬카드의 매력은 '도파민'과 '수집욕'이었다. 이 모 씨는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도파민'이 가장 재밌다"고 말했다. 올해 봄부터 카드를 모았다는 박 모 씨(25·여)도 "수집하는 것을 좋아해 어릴 때 포켓몬 스티커를 모았는데 이제는 카드를 모으며 수집욕을 채운다"고 설명했다.
또 이들은 취미로 수집을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용돈벌이도 함께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모 씨는 "좋은 카드가 나오면 번개장터에 판다"며 "한 달에 20만~30만 원 정도는 버는 것 같다. 가장 비싸게 판 카드는 30만 원이었다"고 말했다. 박 씨도 "카드 팩을 쌓아 놓고 뜯는 재미가 있다"면서 "가장 좋은 카드로는 한 번에 20만 원 정도를 번 적 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랜덤 상품을 위한 오픈런 열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6월에는 랜덤 캐릭터 인형 '라부부'를 사기 위해 국내 매장 앞 대기 줄이 이어지며 안전 우려로 오프라인 판매가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랜덤박스의 무작위 보상 구조가 젊은 세대의 소비 심리와 결합하면서 반복적인 구매와 대기 행렬을 만들어낸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소비를 하나 과정 자체를 놀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첨의 도파민과 함께 당첨 안 됐을 때 느껴지는 좌절감도 또 하나의 재미로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복권 사는 심정과 비슷하다"며 "안정적인 수입은 아니지만 당첨과 꽝의 재미에 더해 한 번 당첨되면 내가 쓴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보상할 만큼 결과가 주어진다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가 오픈런을 하면서도 포켓몬 랜덤 카드팩을 구매하는 이유는 '경험 욕구' 때문"이라며 "기성세대의 입장에서는 비합리적인 소비로 보일 수 있지만, 상품의 획득뿐 아니라 구매하는 과정까지를 즐기는 것이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원하지 않는 카드가 나오더라도 그 과정을 충분히 즐긴 후 결과적으로 판매를 통해 경제적으로도 이윤을 취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 구매의 효율성이 충족된 것"이라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포켓몬카드를 사기 위한 인파가 몰린 모습. 2026.7.9 © 뉴스1 윤지오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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