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선언으론 부족…생명·감응력 반영해야"

사회

뉴스1,

2026년 7월 16일, 오후 04:49

이계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도물의 비물건화' 입법 재정 토론회에서 '동물의 비물건화를 위한 민법 개정안 고찰'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폭염 속 차 안에 갇힌 동물을 구하기 위해 창문을 깼다가 재물손괴 책임을 질 수도 있다. 현행 민법상 동물이 여전히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에서 나아가 생명과 감응력을 가진 존재로 법적 지위를 재정립하고 이에 맞춰 민법과 동물 관련 법제를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와 한국법조협회는 1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 베리타스홀에서 '동물의 비물건화 입법 쟁점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회는 함태성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비물건화 선언만으론 부족…"생명·감응력 담아야"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장은혜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동물 관련 법제화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장은혜 박사는 현재 동물 관련 분쟁이 재산법 체계 안에서 처리되고 있어 생명과 감응력을 가진 동물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최근 법원은 이미 변화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반려동물 손해배상 사건에서는 시장가치만으로 손해를 제한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물학대 사건에서는 동물의 고통과 사회통념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반려동물 귀속 분쟁에서도 동물등록 명의보다 실제 취득 경위와 양육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판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 박사는 현재 논의되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동물이 어떤 존재인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데다, 특별한 규정이 없는 경우 여전히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어 비물건화의 실질적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은혜 한국법제연구원 박사가 '동물의 비물건화' 입법 쟁점 토론회에서 '동물 관련 법제화의 현주소와 개선 방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이에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처럼 동물을 물건과 구별하면서도 물건 규정을 준용하는 '소극적 비물건화'보다, 프랑스와 스페인, 캐나다 퀘벡주처럼 동물을 '감응력을 가진 생명체'로 규정하는 적극형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넘어 생명성과 감응력에 기초해 적극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물건화의 핵심은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 대한 권한을 보호·관리 책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라며 동물등록제 개선과 사육자 적격성 심사, 반려동물 손해배상 특칙, 강제집행 제한 등 후속 입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민법 개정과 기본법…"정부도 제도 정비 착수"
지정토론에 나선 박주연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변호사는 현행 법체계가 동물 구조를 위축시키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폭염 속 차 안에 동물이 갇혀 있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창문을 깨더라도 법적으로는 타인의 물건을 훼손한 행위가 문제 될 수 있다"며 "동물의 생명 보호가 독자적 법익으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에서는 구조자가 법적 책임을 우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재판소도 2013년 동물은 인간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객체가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도록 보호해야 할 생명체라고 판단했다"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우리 법체계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지선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국 사무관은 정부가 추진 중인 동물복지기본법 제정 방향도 소개했다.

원 사무관은 "동물복지기본법 제정이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며 "고통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서 동물을 규정하고 종 고유의 행동을 보장하는 등 적극적인 동물복지 원칙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물생산업 영업 기준 강화와 동물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혀 유죄 판결 시 일정 기간 소유·관리 등 금지하는 제도 도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법원 판단도 바뀐다…"비물건화" 실질 효과
'동물의 비물건화' 입법 쟁점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뉴스1 한송아 기자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이계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물의 비물건화 민법 개정의 필요성과 의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동물은 자기인식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으며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라며 "법 현실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람과 같은 권리능력이나 소송능력을 곧바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동물 보호를 중심으로 법제를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민법 개정이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판 실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법관의 법형성 범위가 비교적 넓은 편"이라며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어떤 법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법적 불안정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물건화 민법 개정안은 법관이 동물 관련 사건을 판단하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며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단순한 상징 규정이 아니라 재판 규범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규정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민법 개정 이후 손해배상과 강제집행, 상속, 신탁 등 사법 전반의 후속 입법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분쟁 늘 수도"…동물 범위·손해배상 기준은 과제
반면 선언 규정만으로는 새로운 법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정다영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무에서는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면 담보나 강제집행은 어디까지 가능한가'와 같은 새로운 분쟁이 생길 수 있다"며 "비물건화 선언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려면 동물복지나 생명존중 등 물건 규정 준용의 예외 사유를 법률이나 해석지침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법에서 동물의 정의를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동물보호법과의 관계, 반려동물과 농장·실험·야생동물의 범위, 영리·비영리 목적에 따른 적용 범위 등을 둘러싼 논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정호 서울대 법학연구소 박사는 비물건화의 적용 대상 역시 중요한 쟁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비물건화가 반려동물 문제를 모든 동물로 확장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보호 필요성은 반려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동물과 관계를 맺는 모든 영역에서 보호 필요성을 기준으로 물건 규정 준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친밀영역에서도 동물 보호 법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민법의 특별 규정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해피펫]

badook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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