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속상사가 둘이라고?[최기훈의 외국계기업 생존기]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18일, 오전 08:31

외국 생활 경험없이 외국계 기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국내 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뒤 30대 후반에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 고위 임원까지 지낸 금융인은 흔치 않다. 저자가 들려주는 외국계 기업의 문화와 업무 방식, 그 안에서 부딪히고 배운 생생한 장면들은 외국계 기업 취업과 커리어 전환에 관심 있는 2030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최기훈 사진2
[최기훈 아자스쿨 이사] 채용 면접을 앞두고 “직속 상사가 둘이라서 그 두 명이 각각 인터뷰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국 사장(CEO)이 그 국가 내의 여러 부서를 총괄하지만 여러 나라의 동일한 업무를 묶어서 관장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 내가 한국의 마케팅 부서장이면 한국의 사장과 아시아 마케팅 부문 대표가 동시에 직속상사가 되는 것이다. 아시아 마케팅 부문 대표는 여러 국가의 마케팅 부서를 관리하며 글로벌 마케팅 총괄 대표를 직속상사로 두게 된다. 이렇게 국가별, 기능별, 제품별로 보고 라인이 겹쳐 있는 것을 매트릭스 조직이라고 한다.

매트릭스 조직의 보고 라인도 실선과 점선으로 나눠진다. 실선 보고 라인은 평가와 승진, 업무지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관계고 점선은 그보다 약한 관계다. 보통 기능별 보고 라인이 부서 업무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실선이고 국가 CEO는 그 아래 여러 부서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점선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홍콩에서 CEO가 마케팅 부서장이 마음에 안들어 인사조치를 하고 싶어도 아시아 또는 글로벌 마케팅 대표가 반대한다면 쉽지 않다. 둘 다 실선인 경우도 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경우 대체로 CEO의 권한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편이다.

이런 매트릭스 조직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기능별 보고 라인을 통해 글로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국가별로는 현지 사정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다. 마케팅, 재무, 인사, 정보기술(IT) 등 각 기능별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고 다른 나라와 교류하며 성공사례를 도입하기도 쉽다. 젊은 직원들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일하며 성장기회를 가질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보고 라인 간에 충돌이 생기는 경우다. 한국 지사장은 매출이 급해서 빨리 프로모션을 해야 하는데, 글로벌 마케팅 조직에서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할인 행사를 반대할 수 있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회의가 많고 의사결정이 느리기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소재가 모호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는 다른 부서 주니어 직원이 직급이 높은 나에게 별로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매트릭스 조직은 대부분 순환보직을 하지 않고 해당 기능 내에서 쭉 성장하며 자리가 높아진다. 그 주니어 직원 입장에서는 내가 그 부서로 가서 자신의 직속상사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기능조직과 보고 라인을 우선하는 문화가 강하다. 다른 부서 높은 사람에게 주눅들지 않고 내가 속한 부서의 입장을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다른 부서 주니어가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고집하는 경우 “나는 너의 직속상사와 이야기하겠다”고 해야 한다. 삭막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럴 땐 ‘윗선끼리 논의(senior-level discussion)’라는 조직 논리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이나 은행들은 순환보직을 통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사발령에 따라 계속 소속이 바뀌고 다른 부서 상사도 언제 내 직속상사가 될지 모르니 잘 대해야 한다. 조직 전체적으로 상명하복과 결속력이 강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부서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고 업무협조도 좀 더 원활하다.

우리나라 몇몇 금융지주사들도 각 자회사의 비슷한 업무를 기능별로 묶어 총괄하는 조직 변화를 시도했는데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여전히 각 자회사별 독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기능별 보고 라인이 무력화되기도 하고 계열사 간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제약이 있기도 했다. 소매금융, 기업금융, 리스크관리 등 각 기능이 은행과 증권, 보험이 많이 달라서 시너지가 있는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정착해 나가는 곳도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면서 항상 가졌던 고민이 글로벌 통일성과 현지화의 조화였다.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해당 기업의 정체성을 동일하게 지키면서도 적절하게 각 국가 사정을 반영해야 한다. 매트릭스 조직은 이런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런 본질을 이해하면 매트릭스 조직에서 어떤 사안은 어떤 보고 라인을 우선할지, 어떤 논리로 두 명의 직속상사를 설득할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최기훈 이사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피델리티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SC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재직 중이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