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싫은 사람의 옳은 말, 좋은 사람의 틀린 말

사회

이데일리,

2026년 7월 22일, 오전 05:00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싫은 사람이 생긴다. 말투가 거슬리거나 과거의 행동으로 신뢰가 무너졌거나 가치관이 전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그 감정이 판단의 자리에 앉는 순간 시작된다. ‘저 사람은 싫으니 그의 말도 틀렸을 것이다’와 ‘내가 믿는 사람이니 그의 말은 옳을 것이다’는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오류다. 사람에 대한 호감과 그가 내놓은 주장의 타당성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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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이 오류의 작동 방식을 ‘후광효과’로 설명한다. 하나의 긍정적 인상이 그 사람의 능력과 판단 전체를 좋게 보이게 만들고 반대로 한 번 형성된 부정적 인상은 그의 모든 말을 나쁘게 해석하게 만든다. 평소 까칠한 직원이 “이 제품은 안전성 검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을 때 그가 싫다는 이유로 경고를 무시하면 조직은 큰 사고를 맞을 수 있다. 반대로 존경하던 상사가 “실적을 부풀려 보고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잘못된 제안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판단의 대상은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 말이 사실과 원칙에 맞는가’다. 주장을 검토하지 않고 말한 사람의 결점을 공격해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전형적인 인신공격의 오류다.

물론 화자의 신뢰성이 언제나 무관한 것은 아니다.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주장은 화자가 누구든 증거로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직접 봤다”처럼 독립적 확인이 어려운 증언이라면 화자의 과거 기록도 판단 근거가 된다. 원칙은 간단하다.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은 주장을 검증하고 검증하기 어려운 증언은 화자의 기록까지 검증한다. 어느 경우에도 호감과 비호감이 증거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이 오류는 정치에서 가장 심각해진다. 같은 정책도 지지하는 정당이 제안하면 현실적 대안이 되고 반대 정당이 제안하면 숨은 의도부터 의심한다. 그 순간 시민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체가 아니라 우리 편의 잘못까지 변호하는 응원단으로 바뀐다. 해법은 사실과 가치의 구분이다. 실업률이 올랐는지, 예산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사실의 문제다. 증거에 따라 진영과 무관하게 같은 답이 나와야 한다. 반면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 안보와 자유의 균형은 가치의 문제로 합리적인 사람들도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다만 가치 논쟁에도 원칙은 있다. 상대의 논거를 내 편의 논거와 같은 엄격함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내 편의 비약에는 눈감으면서 상대의 오류만 찾아낸다면 그것은 토론이 아니라 편들기다.

그래서 기준은 깃발이 아니라 거울이어야 한다. 기준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될 때만 기준이다. 내 편에게는 면죄부가 되고 상대에게만 칼이 되는 잣대는 기준이 아니라 무기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이 기준을 우리 편의 잘못에도 똑같이 적용한 적이 있는가.’ 그런 기억이 없다면 내가 들고 있는 것은 기준이 아니라 진영의 깃발일 가능성이 크다.

이 분리는 조직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심리적 안전감이 높은 조직은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는 조직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이견을 말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런 환경은 말하는 사람의 용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누가 말했는가’와 ‘그 말이 타당한가’를 분리할 때 비로소 작동한다. 껄끄러운 사람의 지적이 계속 묵살되는 조직에서는 아무리 자유로운 발언을 강조해도 결국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까다로운 반대자의 불편한 지적 하나가 조직을 실패에서 구할 수도 있다.

물론 거짓과 조작을 반복하며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사람에게까지 무조건 신뢰를 보낼 필요는 없다. 개별 주장을 인상만으로 배척하는 것은 감정이 증거를 대신하는 오류지만 반복적으로 확인된 거짓의 기록을 근거로 신뢰를 거두는 것은 축적된 증거가 내린 판단이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주장은 옳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번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두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감정과 판단은 분리된다. 개인과 조직, 사회의 성숙함은 바로 그 어려운 지점에서 드러난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옳음이다. 사람에 대한 감정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만큼은 감정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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