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품격…권리는 키우고, 책임은 피하나[이근면의 품격 몽상]

사회

뉴스1,

2026년 8월 04일, 오전 06:3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사람들연구소 이사장)

노동 환경이 격변기를 맞이했다. 노란봉투법으로 국가경제·산업 정책까지 영향과 논란이 점증되고 국가 책임자의 유권해석까지 등장하는 작금이다. 거기에 뉴노멀이라는 'N% 성과급'까지 가세하니 과연 노동과 근로의욕, 생산성, 노동의 시장가치, 이 모든 것이 카오스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되짚어보면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노동의 땀 위에서 이뤄졌다. 한강의 기적도, 세계가 인정하는 반도체·자동차·조선·방산 강국도 현장에서 묵묵히 일한 노동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노동의 가치는 어떠한 시대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노동은 지금 또 하나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노동의 권리는 크게 성장했는데, 노동의 책임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가.

노동시간 단축, 산업안전 강화, 복지 확대, 노동조합의 권한 강화 등 노동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권리는 언제나 책임과 함께 갈 때 사회적 신뢰를 얻는다. 권리만 확대되고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그 부담은 기업과 국가, 그리고 미래세대에 돌아간다.

갈림길에 선 한국 노동…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란
최근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노동계는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고 주장하고, 기업은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동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그러나 기본권도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 속에서 행사돼야 한다. 정당한 노동쟁의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폭력과 불법 점거, 생산시설 파괴나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노동권의 보호와 책임 원칙의 유지가 함께 갈 때 노동의 품격은 더욱 높아진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난 3월 10일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최지환 기자

우려되는 것은 노동의 정치화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조직이지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문제가 정치적 진영논리로 들어가는 순간 기업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생산성과 경쟁력은 사라진 채 정치적 승패만 남게 된다. 여기에 정치적 유불리를 먼저 따지는 일부 정치인의 행태로 인해 교묘히 포장되는 노동 가치의 왜곡이 심화한다.

노동조합 역시 사회적 권력을 가진 조직이다. 기업이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듯 노동조합도 회계의 투명성과 민주적 운영, 조합원에 대한 책임과 국민에 대한 설명 의무를 함께 가져야 한다. 권력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노동의 힘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국가산업 전체와 발전에 대해 미래 지향적이고 균형 잡힌 경제적 시각이 노동세력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국민 모두의 이익의 합을 위해.

'N% 성과급', 새로운 노동의 '뉴노멀' 될 수 있을까
최근 대한민국 노동시장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성과급 뉴노멀'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초호황으로 기업이 거둔 막대한 이익이 대규모 성과급이라는 형태로 종업원에게 배분되고 있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은 지역경제와 소비시장, 부동산 시장까지 움직이고 있다.

기업의 성과는 경영진만의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과 생산 현장, 영업과 품질관리까지 모든 구성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성과를 함께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새로운 노동의 뉴노멀이 될 수 있는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지금의 호황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성과급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권리처럼 인식되기 시작하면 불황기에는 오히려 더 큰 노사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불황기에 회사가 적자라면 N%만큼 종업원이 갹출해 손실을 균등 분담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주주의 권리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반도체의 경우 손실도 수조 원 규모다. 그렇다면 불황에는 수억 원씩 물어낼 것인가? 성과급은 성과에 따라 일정 부분 변하는 보상이어야지, 고정임금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다. 특정 산업과 특정 기업의 초과 성과급이 노동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면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자영업 종사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은 심화하고, 중소기업은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도 고민해야 한다. 초과이익을 현재의 성과급으로 모두 배분할 것인지, 미래 연구개발과 시설투자, 청년 채용,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위해 남겨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오늘의 성과를 모두 소비하면 내일의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국가 역시 단기적인 세수 증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과 배분이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정문에서 7월 16일 열린 삼성전자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 집회에서 조합원들이 2026년 임금협상에 따른 성과급 격차를 규탄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김영운 기자

노동, 기업, 국가가 함께 성장하는 길 선택해야
AI 시대는 노동시장 자체를 바꾸고 있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은 단순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노동시장 개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경쟁력은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높은 생산성과 노사 간 신뢰에서 나온다.

노동도 더 이상 보호의 대상만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만드는 주체가 돼야 한다. 생산성과 기술 혁신, 직무 역량 향상에 함께 참여하고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노동문화가 필요하다.

또 하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래세대의 기회다. 노동정책은 아직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한 청년들의 기회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강한 기득권이 자신의 권리만 확대하고 노동시장 진입 장벽을 높인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청년세대가 된다. 신규 채용은 줄고 기업의 투자 여력은 감소하며, 사회는 활력을 잃게 된다.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자본에 기울어졌다고 말하고, 기업은 오히려 기업이 더 불리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 기울어진 운동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 노동과 미조직 노동, 그리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좋은 노동은 좋은 기업을 만들고, 좋은 기업은 더 많은 일자리와 더 좋은 복지를 만든다. 국가는 어느 한쪽의 편이 아니라 공정한 심판이 돼야 한다. 노동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함께 고민하고, 기업은 정당한 보상과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노동과 기업이 서로 승패를 겨루는 시대를 넘어 함께 세계와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세계는 노동과 기업이 함께 강한 나라를 선택한다.

노동이 살아야 기업이 살고,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노동의 품격은 파업의 횟수나 성과급의 액수로 결정되지 않는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고, 성과에는 미래가 함께하며, 자유에는 질서가 존재할 때 노동은 비로소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진정한 뉴노멀은 과연 무엇일까. 권리만 주장하는 노동도,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도 오래갈 수 없다. 노동과 기업, 그리고 국가가 함께 성장하는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세계가 존경하는 품격 있는 노동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opini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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