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안 쓰고 시원해"…폭염에 핫플된 '이곳'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06일, 오전 06:16

[이데일리 염정인 기자 정유진 수습기자] 최근 서울 낮 최고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자 지하상가가 ‘도심 속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상가를 찾은 시민들은 펄펄 끓는 야외를 피해 잠시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다며 숨을 돌렸다. 특히 지하도 한편에 마련된 휴게공간은 백화점·카페와 같은 일반 상업시설보다 눈치를 덜 볼 수 있다는 장점 탓에 많은 시민들이 몰리고 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 39.2도를 기록한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지하상가 한켠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서울의 낮 최고기온 39.2도를 기록한 지난 4일 서울 송파구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지하상가 한켠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돈도 안 쓰고 시원해 좋아”

4일 서울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강남구 일원동은 무인 자동기상관측장비(AWS)로 39.2도를 찍었다. 서울의 최고온도 기록을 갈아치운 이날 취재진이 찾은 잠실역·고속터미널역 등 주요 지하도상가에는 많은 시민들로 북적였다. 상가 관계자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34도 안팎의 기온을 기록한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서는 “어휴 덥다. 지하로 걷자”, “잠깐 안에서 쉬었다 가자”며 걸음을 돌리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부산에 사는 임모(51) 씨는 “병원 온 김에 관광 좀 할까 하니 무슨 부산보다 더 덥다”며 “어제도 밤에만 잠깐 석촌호수 보러 나간 게 전부”라고 밝혔다. 이어 “오늘은 그냥 지하상가에만 있을 예정”이라고도 했다.

또한 지하도상가 곳곳에 조성된 휴게공간은 오전부터 하나둘 자리가 차더니 점심시간 전에 대부분 만석이 됐다. 특히 아예 자리를 잡고 신문까지 넓게 펼쳐 든 노인들도 있었다. 권모(72) 씨는 “요새 너무 더운데 굳이 돈 쓸 거 없지 않느냐”며 “여기가 노인정보다 친구 만나기도 좋고 눈치도 안 보인다”고 말했다.

집에서 얼음물까지 챙겨 온 70대 여성 박모 씨도 “집에 혼자 있으면서 종일 에어컨을 가동하면 전기료가 부담된다”며 “오전에 나와서 저녁 먹기 전에 들어간다”고 답했다. 다른 어르신들도 “돈도 돈인데 눈치 안 보이는 게 최고”라며 지하상가를 찾는 이유를 전했다.

지난 4일 서울시 서초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한 중고 의류매장에 평일 낮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지난 4일 서울시 서초구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한 중고 의류매장에 평일 낮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상권도 화색…“일부 업종에만 집중” 토로도

폭염으로 유동인구가 늘면서 다소 위축됐던 지하상가 상권도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영등포뉴타운지하상가에서 2년 넘게 ‘발 마사지’ 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주말에는 더위를 피해 쉬러 오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1000원 기계는 가게 문 밖까지 줄이 늘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줄을 서도 실내니까 덥지 않아서 어르신들도 불만이 없다”며 “특히 고물가 시대에 저렴하고 편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인근 지하상가 중고 의류매장에서 쇼핑 중이던 김지혜(29) 씨도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동묘가 유명해서 방문했는데 너무 더웠다”며 “이곳은 빈티지 의류를 실내에서 구매할 수 있어 요즘같이 덥고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을 때 안성맞춤”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유동인구 확대가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상인들도 많다. 잠실역에서 여성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지하로 다니는 경우가 확실히 많다”면서도 “다만 구경만 하고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다른 업주들도 “유동인구가 늘면서 지하상가가 복잡해지기만 했을 뿐 장사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노년층이 더위를 피해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을 찾는 현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며 “비용 부담 없이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하상가의 유동인구 증가가 상권 활성화로 이어지려면 시민들이 더 오래 머물며 소비할 수 있도록 휴게·편의시설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기준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8.4도까지 치솟았다. 기상청 관계자는 “당분간 서울 등 수도권과 일부 전라권을 중심으로는 일 최고기온이 39도 이상으로 올라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극단적인 더위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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