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다. 다행인 것은 내가 영화로도 보지 않았고 소설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야기 결말이 궁금해서 열심히 읽었다. 인상 깊었던 한두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다른 영어 소설 몇 권을 더 얻어 읽었다.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만 기억했던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비록 축약된 버전이기는 하지만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섭리(Providence)’라는 어려운 영어 단어도 알게 됐다. ‘대지’도 주워들은 내용만 알다가 제대로 읽었다.
이때쯤부터 대형서점에 가면 영어 픽션 코너를 둘러보게 됐다. 한 권 집어 들어 대충 훑어 보고 분량이 적당하고 단어가 어렵지 않은 책으로 골랐다. 소피 킨셀라의 ‘쇼퍼홀릭’은 주인공이 PR회사에 다녀 내 업무와 관련이 있어 흥미롭기도 했다. 책 초반에 ‘튜브(Tube)’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영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동료에게 물어보고 그게 런던 지하철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 작가의 책은 몇 권 더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게임의 여왕’을 시작으로 시드니 셸던 책을 여러 권 읽게 됐다. 출생의 비밀, 살인, 음모 등이 나오면서 흥미진진해 페이지가 잘 넘어갔다. 그다음으로 고른 작가가 존 그리샴이었다. 문장이 비교적 단순하고 일부 법률 용어들만 익히면 단어도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다. 영어소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두 작가의 책이 권할만 하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스러운 현대사 속 어린 시절의 우정과 상처를 담고 있다. 그 후속작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사서 읽었다. 비록 원어민에 비해서는 훨씬 부족했겠지만 그래도 영어로 된 문학을 읽고 공감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책은 내 영어실력으로 좀 어려웠으나 내용이 재밌어서 끝까지 읽긴 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영어로 읽으면서 흔히 접하는 나물이나 반찬 이름이 영어로 돼 있어 신기했다. 내 영어가 서툴어 모국어가 주는 감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
영어 실력의 한계로 제대로 읽지 못하고 포기한 책들도 꽤 많다. ‘향수(Perfume)’는 절반도 읽지 못했다. ‘나일강의 죽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시도해 보았으나 초반에 포기했다. 찰스 디킨스의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븐 킹의 책이 재밌다고 해서 살펴봤으나 작은 글자가 가득한 두꺼운 책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소설은 아니지만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당시에 유명한 책을 이왕이면 영어로 읽자고 했던 것도 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로 책을 쓰는 것이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도 영어로 읽긴 했으나 한글로 읽는 게 더 나았을 텐데 하고 후회했다. 생물학 용어와 추상적 개념들이 많아 우리말로 읽어도 어려운 내용을 영어로 이해해 보려고 한 것은 무리였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많이 읽었고 사무실에 좀 일찍 출근해서 읽기도 했다. 집에서는 대사를 연기하듯이 소리 내어 읽어 보기도 했다. 이야기를 즐기며 읽다 보니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내용 이해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경우에는 굳이 사전을 찾지 않았다. 한 달에 한두 권 읽을 때도 있었고 한 권 읽는데 몇개월이 걸린 적도 있었다. 인공지능(AI)의 통번역이 너무나 훌륭해 영어공부가 굳이 필요한가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시대지만 영어소설 읽기를 권하고 싶다. 원어가 주는 감동이 있고 외국 사람들과 대화 소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내가 그 소설 속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것처럼 영어가 조금씩 녹아 내 몸 어딘가에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 좋다.
■최기훈 이사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하나은행, 미래에셋증권, 피델리티자산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SC제일은행 등 금융권에서 30여 년을 근무하고 지금은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서 최고전략책임자(CSO)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