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더위를 먹어요"…폭염 우울증 시달리는 사람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10일, 오전 06:16

[이데일리 김현재 기자 정유진 수습기자] 15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고지석(46·가명) 씨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 가혹하다. 고씨는 매일 대중교통으로 30분 남짓한 거리의 정신질환 복지시설로 출근한다. 평소엔 큰 문제가 없는 일상이지만 40도 안팎을 오가는 폭염이 쏟아지면서 고씨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그는 햇볕과 열기가 몸을 짓누르면 그 무게가 마음까지 번진다고 했다. 뜨거운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와도 더위에 허덕인다. 집에 에어컨이 없는 탓에 잠을 청해도 10분 만에 깨기 일쑤다. 고씨는 “요즘 같은 무더위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낮에 밖으로 나가면 짜증과 불안이 밀려온다”며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망상과 환청이 이따금 다시 찾아온다”고 토로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폭염에 환자들이 사회활동과 외출을 줄이면서 사회적 고립이 심화돼 증상이 악화하거나 복용하는 약물로 인해 체온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정신질환 악화의 상관관계를 인식할 뿐만 아니라 폭염 기간 정신질환자의 고립을 막기 위해 기존 정신건강 서비스와 돌봄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기후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영향 분석 및 평가도구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2014~2023년)간 정신질환자의 폭염기간(5~9월) 1인당 의료이용 건수는 3.67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파기간(12~2월)의 2.3건 보다 1.6배 많고, 그 외 기간(3~4월·10~11월)의 2.9건 보다 1.3배 많은 수준이다. 폭염기간 정신질환으로 인한 의료이용은 월평균 10만 9149건으로 집계됐다. 이 역시 한파기간(10만 5498건) 보다 3650건 많은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기간 조현병 환자는 평균 19.3일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파기간 대비 1.7배, 그 외 기간 대비 1.3배 많은 수준이다. 우울증 환자의 병원 방문 일수는 7.3일로, 한파기간 대비 1.8배, 그 외 기간 대비 1.3배 높았다. 즉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폭염 상황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씨처럼 이데일리가 만난 환자들은 기록적인 폭염에 정신건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정신장애 당사자 사단법인 ‘경기우리도’에서 활동하는 이한결(32·남) 씨는 4년 전 조현정동장애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최근 2주 넘게 이어진 열대야 탓에 새벽 2~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든다. 그는 “날이 더워서 외출이 어려워지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우울감도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날씨가 더운 것과 정신질환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정신과 약물의 영향으로 무기력한 기분이 계속되거나 체온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폭염이 이를 가중시켜 일부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정신질환의 상관관계를 인식하고, 폭염 기간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폭염기간에 더 취약한 정신질환자들의 여건을 반영해야 한다”며 “현재 정신질환자 대상 복지 서비스 중 상담·치료 복지 지원을 폭염기간에 두텁게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폭염의 장기화가 뉴노멀이 되고 있는만큼 정신건강 관련 정책을 구상할 때 기후 문제를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온열질환으로 인해 고립된 정신질환자들을 발굴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활용했던 영상통화 등의 비대면 방식을 사용해 환자를 돌보는 등 맞춤형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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