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늘] "이젠 끝이야"…520명 앗아간 'JAL 123편' 추락사고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12일, 오전 12:01

[이데일리 김주환 기자] 41년 전 오늘, 도쿄를 떠나 오사카로 향하던 여객기가 제어 불능에 빠져 산속으로 추락하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벌어졌다. 승객과 승무원 524명 중 520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단일 항공기 사고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남은 ‘일본항공(JAL) 123편 추락 사고’다.

1985년 8월 13일 일본 군마현 인근 능선에 추락한 일본항공 보잉 여객기 JAL 123편의 잔해를 군인들이 수색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1985년 8월 13일 일본 군마현 인근 능선에 추락한 일본항공 보잉 여객기 JAL 123편의 잔해를 군인들이 수색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1985년 8월 12일 오후 6시 12분, 승객과 승무원 524명을 태운 JAL 123편(보잉 747SR-46)이 도쿄 하네다 공항을 떠나 오사카로 향했다.

일본의 최대 명절인 오본 연휴 전날이었기에 기내는 고향으로 향하던 귀성객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탑승객 중에는 한국인 승객 3명과 한국계 미국인 3명을 포함해 10개국 외국인들도 함께 탑승해 있었다.

이륙 후 약 12분이 지난 오후 6시 24분, 고도 2만 4000피트 상공에서 굉음과 함께 각 좌석에 산소마스크가 내려왔다. 기체 후문의 압력격벽이 폭발하듯 파열되면서 고압의 공기가 꼬리 쪽으로 분출된 것이다.

이 파열로 수직꼬리날개의 80%가 통째로 뜯겨 나갔고 4개의 유압 계통 전체가 파손돼 조종 유압액이 완전히 새어 나갔다.

조종간 명령이 무력화된 기체는 좌우로 요동치는 ‘더치 롤(Dutch Roll)’과 상하로 솟구쳤다 떨어지는 ‘푸고이드 운동(Phugoid motion)’을 반복하며 제어 불능 상태에 빠졌다.

타카하마 마사미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은 곧장 긴급사태를 선언했다. 방향타 등 조종날개가 작동하지 않자 이들은 좌우 엔진 출력을 다르게 조절해 노를 젓듯 방향을 틀고 플랩을 조작하며 기체를 제어하려 필사의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위치 파악조차 난항을 겪던 JAL 123편은 오후 6시 56분 “이젠 끝이야!”라는 기장의 마지막 외침과 함께 군마현 다카마가가하라산 비탈면에 급강하하며 충돌했다.

조사 결과, 참사는 7년 전 제조사인 보잉이 저지른 부실 정비와 이를 간과한 일본항공의 안전불감증이 합작한 예고된 인재로 밝혀졌다.

일본항공 123편에 사용된 보잉 747SR-46 기종.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즈)
일본항공 123편에 사용된 보잉 747SR-46 기종.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즈)
해당 기체는 1978년 오사카 공항 착륙 과정에서 기체 후미가 지면에 부딪히는 ‘테일스트라이크’ 사고를 겪었다. 당시 보잉 수리팀은 손상된 후부 압력격벽을 수리하면서 규정된 통보강판을 사용하지 않고 두 조각으로 잘라 이어 붙이는 치명적인 정비 과실을 저질렀다.

이로 인해 결합 강도가 정상의 70%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후 약 1만 2000회의 이착륙 동안 가해진 기압차와 금속 피로 균열을 견디지 못한 격벽이 끝내 터져 버렸다. 사고 전년도에 수행된 대형 점검에서도 일본항공 정비진은 이 균열을 발견하지 못한 채 비행에 투입했다.

기체가 불안정하게 비행하던 30여 분 동안 승객들은 극심하게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가족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유서를 종이와 수첩, 봉투 등에 필사적으로 써 내려갔다.

“사이좋게 엄마를 도와주렴” “죽고 싶지 않아” “아이들을 잘 부탁해” 등 현장에서 발견된 수많은 유서는 전 세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객실 승무원들 역시 비상착륙 안내 메모를 작성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을 안심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추락 직후 일본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지휘 체계 혼선은 인명 피해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고 20분 만에 현장 위치를 파악한 주일 미군 헬기가 구조 투입을 제안했으나 일본 측은 이를 거절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인 데다 육상·항공자위대 간 수색 지휘권 혼선, 생존자가 없을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까지 겹치며 구조대가 현장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14시간이 소요됐다. 밤새 추위와 부상 속에 방치됐던 수많은 부상자들은 끝내 저체온증 등으로 숨을 거뒀다.

이튿날 아침 도착한 현장은 육안으로 신원을 판별할 수 있는 시신이 177구에 불과했을 정도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형태가 보존된 기체 후미 좌석에서 여성 승객 4명이 극적으로 생존해 구출됐다.

참사의 전말이 드러났음에도 보잉 측 정비 관계자들에 대한 형사 처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 결함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일본항공 정비 책임자와 보잉과의 연락을 담당하던 엔지니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또 다른 비극이 이어졌다.

이 비극은 전 세계 항공 업계의 안전 시스템을 전면 재편하는 계기가 됐다. 비행기 제조 방식과 정비 검증 단계를 대폭 강화했으며 위기관리 훈련 역시 글로벌 의무 표준으로 정착시켰다.

사고 발생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하네다 공항 인근 JAL 안전계승관에는 사고 기체의 잔해와 유서가 보존돼 있다. 이는 “안전에 타협은 없다”는 무거운 교훈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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