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봉법 쟁의기준 못박으라는 李…전문가들 “결국 본법 고쳐야”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13일, 오전 05:03

[세종=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요구하거나 호남 반도체 공장 신설과 같은 투자 결정을 교섭 의제로 다루겠다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현장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법적 효력이 있는 시행령에 구체적인 기준을 담으라 지시한 후, 해당 지시가 법적으로 타당한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행법에 노동쟁의 범위를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한다는 명시적인 ‘위임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적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서다.

이에 정책 집행을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시행령을 수정할 경우 위법으로 간주될 수 있어 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행령으로 판단 기준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맞서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본법에 위임규정 없어 vs 집행명령으로 가능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 어떤 방법이 있을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업무 지침으로 충분히 모호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대통령이) 지침보다는 구체적인 제도화 검토를 지시하셨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애초 성과급 요구나 반도체 공장 신설 등 구체적인 사례가 노동쟁의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는 해석지침 수정본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쟁점은 시행령에 구체적인 노동쟁의 기준을 담을 수 있느냐다. 시행령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본법에 ‘해당 조항의 세부내용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정한다’는 조항이 있어야 하지만 노란봉투법에는 이 같은 명시적인 위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시행령으로 위임한다는 규정이 없으면 시행령을 만들기가 어렵고, 위임되어 있지 않은 부분은 고칠 수가 없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법률에 명시적인 위임규정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시행령 제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도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는 ‘집행명령’을 이용하면 된다는 얘기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법률에 (위임규정을) 반드시 해야 하는 사항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새로 부과할 때”라며 “그게 아니라면 법률의 위임이 없다고 해도 시행령 부령으로 정할 수 있고, 만약 관련된 (위임규정 등) 법률이 없다면 일단 정책 집행에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권창준 차관이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권창준 차관이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전문가들 “결국 본법 개정이 답”

이처럼 법적 해석이 엇갈리면서 향후 노동쟁의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두고 혼란과 갈등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노동계는 전날 성명을 통해 시행령 개정 지시에 대해 대통령의 ‘월권’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행정 각 부처의 판단이 대통령의 한마디로 손쉽게 재검토되는 장면은 노동정책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선행되는지 의문을 낳는다”며 “노조법의 보호 대상인 노동자가 아니라 재계의 요구에 정부가 화답하는 모양새”라고 밝혔다.

여당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사, 경영권 등 사용자가 내린 고도의 경영상 의사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발의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법 자체가 모호한 규정으로 돼 있고, 사용자성 부분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법에 구체적인 위임 규정이 없는데 하위 법령으로 했다가 위헌성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행령을 개정하려면 결국 본법 개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땜질식 개정이 이어지면, 각 조항별로 연결성이 떨어지고 상법 등 다른 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이유다.

노란봉투법을 적용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아 판례가 없는 탓에 우선은 법원에 판단을 맡기고, 추후 판례가 쌓이면 이를 모아 시행령을 만들자는 대안도 거론된다. 추후 분쟁이 발생하는 부분에서 명확한 법원 판단이 나오면 별도의 시행령을 만들어 모호한 부분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시행령을 개정하려면 본법을 고치는 게 맞다”며 “시행령으로 굳이 조목조목 단체 교섭의 대상을 명시하는 게 가능할지도 의아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본법의 조항을 구체적으로 개정하고 나머지 범위는 행정 해석으로 가능하도록 유연성을 둬서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며 “너무 구체화하면 노사의 자율 교섭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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