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연구비 기근, 중학생엔 100만원 펀드…"예산 칸막이 없애야"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13일, 오전 05:37

[이데일리 신하영 김응열 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수도권 소재 A대학의 김 모 교수는 최근 한 달간 중국의 한 대학으로부터 세 차례나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지금 받는 연봉의 5배 이상을 보장한다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김 교수가 연구 중인 분야는 ‘AI 데이터센터의 열 관리’로 최근 각광받는 분야 중 하나다. 초거대 언어 모델(LLM)의 발전과 고밀도 연산 처리 급증에 따라 데이터센터의 발열 문제를 제어해야 해서다. A대학 관계자는 “연구 실적을 많이 내는 국내 교수들에게 중국 대학과 연구기관이 높은 보수를 앞세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며 “이런 사례가 우리 대학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내 연구활동에 대한 지원이 적다면 향후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Fab)에서 연구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팹(Fab)에서 연구원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 직원들이 억대 성과급을 받으면서 이공계 교수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서울에 있는 한 공과대학 관계자는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연구성과를 냈다면 높은 성과급을 받았을 거라고 자조섞인 말을 하는 교수가 많다”며 “등록금 인상을 억눌러 재정이 충분치 않다보니 교수들의 연구지원에도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2009학년도부터 시작한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이 올해로 18년째 이어지면서 대학 본연의 기능인 연구·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훈호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 재정난으로 국내외 전자학술지 구독 비용을 내지 못해 연구 활동에 지장을 받는 교수들도 있다”며 “우리 대학도 일부 학술지에 접속할 수 없어서 타 대학 교수에게 부탁해 관련 논문을 공유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교부금에 현금복지 키우는 교육청

대학의 이같은 열악한 재정상황과 달리 전국 시·도교육청의 현금성 복지 예산은 5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이종욱 의원(국민의힘)이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 17곳이 현금·현물 지원 사업에 지출한 비용은 5964억원으로 전년(5467억원)보다 497억원(9.1%) 증가했다. 올해 투입될 현금·현물 사업 예산은 총 7658억원으로 2021년(2846억원)의 2.7배에 달한다.

시·도교육청의 현금·현물 사업 예산이 증가하는 데에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규모의 증가와 궤를 같이 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 학령인구(6~17세)는 교육교부금을 도입한 1972년 1073만명에서 올해 492만명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교육교부금은 1074억원에서 올해 72조원으로 670배나 증가했다. 최근 10년(2016~2026년)만 비교해도 초·중·고 학령인구가 596만명에서 492만명으로 17.4% 감소한 반면 교육교부금은 43조원에서 72조원으로 67.4% 늘었다.

학생 감소에도 교육교부금 규모가 커지면서 올해 7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교육감들도 현금성 지원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고 대중교통비와 현장체험학습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도내 모든 중1 학생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해 자산운용사에 이를 위탁 운영한 뒤 고교 졸업 후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는 펀드를 계획 중이다.

학생 1인당 지원 예산은 초·중·고와 대학 간 2배 가까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초·중·고 학생 1인당 교육교부금은 올해 1500만원을 돌파할 전망이지만 대학생 1인당 예산(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은 868만원에 불과하다.

2025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에 대한 공교육 투자는 OECD 38개국 중 초등교육(1만 8884달러)과 중등교육(2만 4110달러)은 최상위권이다. 우리나라는 초등교육의 경우 38개국 중 5위였다. 중등교육에서 우리나라는 2위였다.

반면 고등교육(6617달러)은 최하위권에 속했다. 회원국 38개국 중 34위에 그쳤다. 우리나라보다 고등교육 투자가 낮은 곳은 그리스, 칠레, 멕시코 등이었다.

(그래힉= 이미나 기자)
(그래힉= 이미나 기자)
◇“대학 인재 양성에도 투자해야”

초·중등 교육과 고등교육 간 투자 격차가 크다 보니 교육교부금을 고등교육에도 쓸 수 있게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교육계에선 학생이 줄어도 새로운 교육투자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추가 수요를 계산해 예산에 반영하면 될 것”이라면서도 “추가 교육수요 발생이 예산에 칸막이를 쳐야 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실습 인프라가 취약하면 기업이 요구하는 교육 수준을 달성할 수 없다”며 “반도체 장비들이 워낙 고가라 대학은 이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반도체를 비롯해 대학의 첨단산업 인재 양성 기능을 강화하려면 공정·설계·실험 인프라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육교부금 제도를 도입했을 당시와 지금의 교육환경이 달라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교육에 먼저 배정한 취지는 과거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에 대한 재정 투입 규모는 OECD 최고 수준이라 내국세 연동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했다. 이어 “교육재정을 충분히 지원한다는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학생 수와 재정 수요에 맞게 배분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재정 전문가인 남수경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투자를 항구적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등교육교부금제도와 같이 안정적 지원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 교수는 “현재의 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는 한시적(5년 지원 뒤 일몰) 조치”라며 “이를 항구적 제도로 전환하고 고등교육에 배분되는 재원의 규모와 용도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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