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범행에 사용한 위조된 구속영장. (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어 검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약식 조사가 필요하다"며 피해자를 모텔로 들어가게 한 뒤 위조된 보호관찰서와 신체검사서를 보냈다. 이히 검사란 사람은 "구속 전 신체검사를 해야 한다"며 옷을 벗고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 보내라고 요구했다.
구속될 수 있다는 공포에 빠진 피해자에게 마지막으로 접근한 것은 '금융감독원 직원'이었다. 피해자를 위로하는 척하며 "사건을 해결하려면 공탁금을 보내야 한다"고 속여 돈을 뜯어냈다.
검찰 수사관에서 검사, 금감원 직원까지 차례로 등장한 이들은 모두 한패인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성착취하며 수십억 원을 뜯어낸 태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 피싱사기수사2계는 범죄단체활동과 전기통신금융사기피해방지및피해금환급에관한특별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조직원 11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9명을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태국 방콕에 콜센터를 두고 검찰과 금감원을 사칭해 피해자 68명으로부터 약 67억 원을 가로채고, 피해자들을 모텔로 유인해 나체사진을 촬영하도록 하는 등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를 받는다.
조직이 범행에 사용한 위조 금전 공탁통지서.(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수사관→검사→금감원 역할 분담하고 실적 좋으면 '승진'…나체 사진 받고 심리적 통제
이들 조직의 범행은 '검찰 수사관·검사·금감원 직원'으로 역할을 나눠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먼저 1선 조직원은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을 사칭해 "계좌가 범죄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겁을 줬다. 이어 가짜 검찰청 홈페이지로 유도해 위조된 범죄자금 단속 통보서와 구속영장을 보여줬다.
이후 2선 조직원이 검사로 등장해 피해자를 모텔로 들어가게 한 뒤 위조한 보호관찰서와 신체검사서를 보냈다.
신체검사서에는 모든 옷을 벗고 신체를 촬영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지시가 담겼다.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려 앉아 신체 특정 부위까지 노출하도록 요구했다
조직은 이를 "법적으로 허용된 절차이며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속였다. 위조 문서 말미에는 '경찰청 형사기동 1팀 팀장' 명의와 직인까지 넣어 실제 수사기관의 신체검사 절차인 것처럼 꾸몄다.
지난해 12월 4일 이뤄진 해당 조직에 대한 합동 단속. (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마지막에는 3선이 금감원 직원으로 나섰다. 겁에 질린 피해자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형사처벌을 피하려면 사건 해결 공탁금을 금감원 계좌로 보내야 한다"고 속여 돈을 받아냈다.
이 같은 '1선→2선→3선'은 조직 내 승진 체계이기도 했다. 실적이 좋은 조직원은 검찰 수사관 역할인 1선에서 검사 역할인 2선, 금감원 직원 역할인 3선으로 올라갔다. 수당도 1선은 편취금의 4%, 2선은 10%, 3선은 13%로 높아졌다.
이들 조직은 중국인 총책과 한국인 공동총책을 중심으로 한국인 20명과 중국인 4명 등 24명 규모로 꾸려졌다. 방콕에 콜센터와 숙소를 마련하고 조직원들을 합숙시키며 범행 시나리오를 교육했다.
조직 총책 A 씨(29·남)이 지난해 12월 4일 태국 방콕 현지에서 검거돼 호송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검거 요청 한 달 만에 태국 콜센터 합동 단속…조직원 13명 검거
앞서 경찰청 국제치안협력국은 태국 방콕의 보이스피싱 콜센터 2곳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뒤 글로벌 공조 작전 'Breaking Chains'를 통해 태국 측에 검거를 요청했다.
태국 경찰은 현지 파견 한국 경찰관과 공조해 지난해 12월 4일 콜센터 2곳을 합동 단속해 조직원 13명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 9명은 주태국 한국대사관 등 관계기관과의 협업을 거쳐 올해 6월까지 모두 국내로 송환돼 구속됐다.
경찰은 이후 국내에 입국한 조직원 2명도 추가로 검거해 현재까지 1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경찰은 붙잡히지 않은 피의자 9명을 적색수배하고 태국 경찰과 국제공조를 이어가며 추적하고 있다.
이계형 서울경찰청 피싱사기수사2계장이 13일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피싱사기 조직원 검거 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2026.8.13 © 뉴스1 권준언 기자
이계형 서울경찰청 피싱사기수사2계장은 "피해자를 모텔에 고립시킨 뒤 나체사진까지 촬영하게 해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돈을 뜯어낸, 보이스피싱에 성착취 범행까지 결합한 매우 악랄한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청이나 금감원 등 국가기관이 모텔에서 신체수색을 하거나 사건 해결 명목으로 공탁금 송금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는 만큼 이런 요구에는 절대 응하지 말고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