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서경덕이 주목한 ‘독립운동가’ 박자혜는 누구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15일, 오후 04:05

[이데일리 남소연 기자] 광복절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여성 독립운동가 박자혜 선생을 조명하면서, 그의 삶과 독립 정신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캡처
사진=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캡처
서 교수는 1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자신이 기획하고 송혜교가 후원한 ‘만세운동을 이끈 간호사, 박자혜’라는 제목의 영상을 다국어로 제작해 국내외에 공개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1919년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박자혜 선생이 3·1운동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민족의 현실을 깨닫고, 간호사들의 독립운동 조직인 ‘간우회’를 결성한 내용 등이 담겼다.

15일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박자혜 선생은 1919년 3월 1일부터 3개월 이상 전개된 만세운동으로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며 나라 잃은 민족의 울분을 함께 느끼게 됐다.

이후 자신도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간우회’를 조직해 동맹파업과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계획했고 이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기도 했다.

더 이상 일본인을 위해 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병원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망명한 박자혜 선생은 1920년 북경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하며 독립운동이라는 고난의 여정을 함께 했다.

그는 신채호 선생의 독립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가정경제, 자녀 교육, 남편의 독립 활동 내조 등을 담당했고, 귀국 후에는 끊임없는 일경의 감시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신채호 선생이 의열단 활동에 매진할 당시, 박자혜 선생도 국내에서 독립운동 지원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당시, 서울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석주 의사를 돌보고 안내하며 의열단 활동을 지원했다.

1936년 신채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박자혜 선생은 더욱 외롭고 힘겨운 여성을 보냈다. 큰아들은 국외로 이주하고, 둘째 아들은 이듬해 숨졌다. 박자혜 선생은 광복을 불과 2년 앞둔 1943년 홀로 셋방에서 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한편, 서경덕 교수와 송혜교는 그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국내외에 널리 소개하고 있다.

박자혜 선생을 다룬 영상은 일곱 번째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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