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쏟아져 차량이 매몰돼 있다. 2026.8.17 © 뉴스1 윤일지 기자
광복절 연휴 경남 남해안에 쏟아진 비는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일강수량을 기록할 정도로 강했다. 거제에는 하루에만 577.4㎜의 비가 쏟아졌고, 한 시간에 124.5㎜가 내리는 200년 빈도의 폭우까지 발생했다. 사흘이 채 안 되는 기간 누적 강수량은 평년 여름철 강수량의 90%를 넘어섰다. 남서쪽에서 북동진한 저기압과 한반도 북동쪽 고기압 사이로 남해의 뜨겁고 습한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비구름이 남해안에 집중된 탓이다.
마치 남해에서 수증기를 가득 실은 바람이 비구름에 계속 연료를 공급한 셈이다. 강한 남풍이 남해의 수증기를 실어 나른 데다 남해안의 산지가 공기의 이동을 막아 위로 들어 올리면서 비구름이 더욱 강하게 발달했다. 여기에 27~28도에 달하는 높은 남해 수온까지 더해지면서 폭우의 위력을 키웠다.
사흘 만에 여름비 다 내렸다…거제·통영, 관측 이래 최고 강수량
17일 거제에는 오후 1시까지 일 강수량 577.4㎜가 기록됐다. 거제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일강수량이자 기상청이 순위를 관리하는 전국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ASOS)의 역대 일강수량 가운데 3위에 해당한다.
거제보다 하루에 많은 비가 내린 사례는 2002년 태풍 '루사' 당시 강릉 870.5㎜와 대관령 712.5㎜뿐이다. 통영도 이날 오후 1시까지 409.7㎜가 내려 1968년 관측 시작 이후 일강수량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비는 양뿐 아니라 강도도 이례적이었다. 거제에서는 오전 1시 32분부터 1시간 동안 124.5㎜가 쏟아져 종전 1시간 최다 강수량 96.5㎜를 크게 넘어섰다. 통영도 1시간에 97.4㎜가 내려 기존 기록 86.5㎜를 경신했다. 기상청은 각각 약 200년,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수준의 강수 강도로 분석했다.
거제 서이말과 부산 가덕도에서도 1시간에 각각 100.5㎜와 101.5㎜가 내렸다. 올여름 들어 1시간 100㎜ 이상 비가 관측된 것은 이번 거제와 가덕도가 처음이다.
연휴 동안 쌓인 비의 양도 많았다. 15일부터 17일 오후 1시까지 거제에는 851.1㎜, 통영 704.8㎜, 부산 가덕도 441.0㎜, 사천 삼천포 380.5㎜가 내렸다. 거제와 통영의 평년 여름철 강수량이 각각 935.1㎜와 728.8㎜인 점을 고려하면 두 지역 모두 사흘이 채 안 되는 동안 여름 한 철 내릴 비의 90% 이상을 받은 셈이다. 여름철에 석 달 동안 내릴 비가 사흘도 안 되는 시간에 한꺼번에 쏟아진 셈이다.
태풍 잔해·바람길·고수온·지형…겹겹이 중첩된 폭우 조건
이번 폭우는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저기압의 이동 경로에 강한 남풍이 더해지고, 여기에 높은 남해 수온과 남해안의 지형까지 겹치면서 비를 키우는 조건이 한꺼번에 만들어졌다.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화한 뒤 남은 저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서 접근해 북동진하면서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어 올렸다. 북반구 저기압 주변에서는 바람이 반시계 방향으로 불기 때문에 저기압 동쪽에 놓인 한반도로 남풍 계열의 바람이 지속해서 유입됐다.
저기압이 한반도에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강해졌다. 한반도 북동쪽의 고기압과 저기압 사이 간격이 좁아지면서 두 기압계 사이의 기압 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강한 남풍이 남해의 수증기를 가득 실은 채 남해안으로 밀려들었다.
쉽게 말해 '습기를 머금은 거대한 공기 띠'가 남해안으로 밀려온 것이다. 여기에 남해의 해수면 온도가 27~28도로 높아 남풍이 실어 나를 수 있는 수증기의 양도 많았다.
이렇게 유입된 습한 공기가 거제·통영을 비롯한 남해안의 산지와 부딪쳐 상승하면서 비구름이 더욱 강하게 발달했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를 바람이 계속 밀어 넣고, 산이 그 공기를 위로 들어 올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공기가 산을 타고 올라가면서 빠르게 식고 응결했고, 많은 수증기가 짧은 시간에 비로 바뀌면서 폭우가 집중됐다.
기상청이 앞서 이번 강수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던 하층의 강한 남풍, 이른바 하층제트와 지형 효과가 높은 해수면 온도와 함께 겹친 것이다.
ac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