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짱히'로 활동하는 A 씨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만들었다는 김밥 Zine. (사진. '짱히' 제공)
"같은 동네를 걷고 같은 풍경을 봤는데도 사람마다 포착하는 장면과 표현하는 방식이 전부 다르더라고요." 닉네임 '짱히'로 활동하는 A 씨(26)는 Zine(진)의 매력으로 '정답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A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진 관련 콘텐츠를 접한 뒤 친구들과 소모임을 하며 A4 용지 한 장을 접어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동네를 둘러보며 찍은 사진을 활용하는 진 제작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시도하게 됐다.
18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최근 2030을 중심으로 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진은 개인의 관심사나 생각 등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아 제작하는 독립출판물이다. 크기나 형식, 내용에 정해진 규칙이 없어 글·그림·사진·콜라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A 씨 역시 진을 선택한 이유로 형식의 자유로움을 꼽았다. 그는 "내용도, 그것을 담는 방식도 가장 자유로운 형태라고 생각했다"며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타인의 창작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A 씨는 "잘 만들었는지를 판단하기보다 '이 사람은 이걸 이렇게 표현했구나' 하면서 그 진만의 색깔을 발견하게 됐다"며 "창작물을 조금 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점도 진을 만들면서 얻은 즐거움 중 하나"라고 했다.
개인적인 경험이 좋은 창작 소재가 되기도 했다. A 씨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김밥 진'이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너무 개인적인 취향이라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할까' 싶었지만, 이를 소개한 콘텐츠와 실제 진 모두 큰 관심을 받았다는 게 A 씨의 설명이다.
닉네임 '눈설'로 활동하는 B 씨가 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는 동생을 위해 만든 '여행자의 프랑스어' Zine. (사진. '눈설' 제공)
경험·생각을 '물성 있는' 콘텐츠로…"고유한 경험과 취향 담아낼 수 있어"
닉네임 '눈설'로 활동하는 B 씨(29)는 경험과 생각을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물성(物性)이 있는 형태로 남기고 싶어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B 씨가 처음 제작한 진은 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는 동생을 위해 만든 '여행자의 프랑스어'다. 평소 공부하던 프랑스어를 여행자에게 필요한 표현 중심으로 작고 가볍게 정리했다고 B 씨는 설명했다.
B 씨는 "경험과 생각을 블로그나 브런치 글 등으로 만들고는 했는데, 디지털 콘텐츠만으로 만들기에는 왠지 아쉬웠다"며 "보다 선명하고 물성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획부터 내용 구성, 인쇄와 제본까지 제작 과정 전체를 직접 할 수 있다는 점도 진의 매력으로 꼽았다.
B 씨는 실제로 '여행자의 프랑스어'를 블로그에 소개한 뒤 한 독자로부터 진을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를 받기도 했다. 판매 계획은 없었지만 B 씨는 감사한 마음에 직접 만든 진을 해당 독자에게 보냈다. 그는 "동생을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고 뿌듯했던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B 씨는 진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취향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며 "꼭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창의적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고유한 경험과 생각, 나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취향을 진에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5~26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낫어북페어2' 행사장 모습. (사진. @not.a.number.team 제공)
'획일화된' 시대 속 '나만의' 이야기…"요즘 시대 매력적인 표현 방식"
다양한 진을 접할 수 있는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25~26일 열린 독립출판 행사 '낫어북페어2'에는 약 900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현장 안전과 공간 제약으로 발걸음을 돌린 방문객까지 포함하면 1000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주최 측은 집계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 참여한 99개 팀 가운데 41개 팀의 진이 조기 매진됐다. 행사 관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조회수도 총 65만 회 이상을 기록했다.
행사를 기획한 아트 콜렉티브 NaN(낫어넘버)의 모아 작가는 최근 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로 접근성과 자유로움을 들었다. 그는 "인공지능(AI) 콘텐츠나 숏폼 등 빠르게 소비되는 디지털 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 매체의 직관적인 매력에 다시 끌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진의 인기를 최근 나타난 종이 매체에 대한 관심과 연결해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최근 '텍스트 힙' 열풍이 나타나면서 웹진보다는 종이로 직접 만질 수 있고 텍스트가 있는 매체에 대한 소구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진은 창작자가 직접 만들고 발행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과 지향점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매체와 차별화된다는 분석이다.
김 평론가는 "문화의 공동체가 진으로 결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인터넷이나 종이 매체에서 외면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쓰고 편집하고 나누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AI가 사람들의 취향이나 문화, 성향을 획일화할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진을 통해 문화적 저항이나 새로운 (흐름의) 생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ksy@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