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호는 일본 내지인과 말씨·태도 완벽한 '일선동화'의 선구자"

사회

뉴스1,

2026년 8월 18일, 오후 04:53

배우 하영 인스타그램

친일 행적 논란이 연거푸 드러나고 있는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어 잡지에서 를 뜻하는 '일선동화(일본과 조선의 동화)의 선구'로 소개된 사실이 확인됐다.

18일 일요신문에 따르면 1913년 9월 발행된 일본어 잡지 '조선공론' 제1권 제6호에선 '일선동화의 선구 조선인 남편·일본인 아내 평판기'라는 제목으로 안상호에 대한 글이 실렸다.

1913년부터 1944년까지 발행된 '조선공론'은 일제강점기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주요 독자로 삼은 일본어 종합 잡지다. 안상호는 잡지 창간 초기 기획된 '일선동화' 연재에서 첫 번째 인물로 소개됐다.

특히 잡지에 안상호의 언행을 두고 "말씨에서부터 태도까지 일본 내지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조선인에게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재기가 넘치며 대단히 근면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담겼다.

또한 매체에 따르면 '조선공론'에는 안상호가 일본인 아내와 1907년 3월 부부의 연을 맺은 것에 대해 "본래 운 좋은 남자", "복이 많은 남자"라는 표현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상호의 진료 당시 모습과 외모에 대해선 "붉은빛이 도는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 있어 풍채가 볼품 있지는 않다"는 구체적인 묘사가 들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앞서 안상호는 증손녀 하영의 "4대가 의사 집안"이라는 발언 이후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된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정친목회는 경제인과 관료·언론인·교육자·법조인·의료인 등이 참여했으며,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인 이완용이 중심인물로 활동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의 거사로 중상을 입은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이토 히로부미 추모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한 기록을 포함해 그의 부인이 당시 조선총독부에 있던 일본인 고위 장성의 딸이었다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안상호의 과거 친일 행적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khj8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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