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속도’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정부가 단축하려는 여러 절차 중에서도 환경영향평가가 특히 그렇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미리 살펴보고 피해를 줄일 방안을 찾고 필요하면 사업계획 자체를 수정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평가 절차만 남고 실질적인 검토는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기존의 평가 기간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간을 줄이느냐’다. 불필요한 행정 대기와 중복 절차에 드는 시간은 줄여야 한다. 반면 환경을 조사하는 시간, 영향을 검토하고 대안을 비교하는 시간, 주민이 사업의 내용과 영향을 이해하고 의견을 제시할 시간은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평가의 충실성과 주민 참여에 필요한 시간까지 줄이는 것은 행정절차의 효율화와는 다른 문제다.
광주 군공항,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 (사진=전남광주통합특별시)
그렇다면 호남권 반도체 산단에서는 무엇을 살펴야 할까. 반도체 산업단지는 대규모 용수와 전력 공급이 필요하고 많은 폐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산단 내부의 환경영향뿐 아니라 용수 확보와 폐수 배출, 전력망과 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이 주변지역에 미칠 영향까지 살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영향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적절한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환경영향과 함께 중요하게 다뤄야 할 것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서는 편익을 얻는 주체와 부담을 지는 주체가 다를 수 있다. 산업단지는 국가경제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부 주민은 토지 이용의 제약이나 환경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용수 확보와 폐수 방류, 송전시설 설치는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을 직접 바꿀 수 있다.
이처럼 주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환경영향을 예측하고 저감 방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 풀기 어렵다. 주민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듣고 가능한 대안을 함께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절차를 효율화해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있어도 주민의 이해와 신뢰가 형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까지 줄일 수는 없다. 이러한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주민들은 의견수렴이 형식에 그친다고 느낄 수 있다.
신속한 사업 추진과 충실한 환경영향평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조사와 주민 소통을 사업 초기부터 시작하고 병행할 수 있는 절차는 함께 진행할 수 있다. 사업 초기에 쟁점을 확인하고 대안을 마련하면 뒤늦은 보완과 갈등으로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줄어든다. 서둘러 결정하고 나중에 갈등을 수습하는 것이 반드시 빠른 길은 아니다. 처음부터 충분히 살펴보고 지역사회와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길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산업이다. 그만큼 사업 추진 과정도 신중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일수록 환경영향평가를 사업을 늦추는 장애물로 볼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사회적 신뢰를 얻는 과정으로 활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줄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