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수술하려 해도 재료가 없다…소아 의료기기 ‘공급 절벽’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21일, 오후 03:41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아이를 수술하려 해도 몸에 맞는 의료기기와 치료재료를 구하지 못해 수술을 미루거나 다른 치료법을 택해야 하는 일이 소아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아용 의료기기는 성장 단계와 체중에 따라 다양한 규격이 필요하지만 수요가 적어 생산·수입을 꺼리는 업체가 많다. 낮은 치료재료 가격까지 겹치면서 공급 중단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2026 심포지엄에서 곽재건 선천성심장외과연구회 총무이사가 발표하고 있다.(사진=안치영 기자)
21일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2026 심포지엄에서 곽재건 선천성심장외과연구회 총무이사가 발표하고 있다.(사진=안치영 기자)
곽재건 선천성심장외과연구회 총무이사(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21일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열린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연합 2026 심포지엄에서 소아 수술에 필요한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의 공급 불안정 실태를 공개했다.

소아용 수술재료는 성인용과 달리 환아의 나이와 체중,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여러 크기와 규격을 갖춰야 한다. 같은 수술에 사용하는 제품이라도 신생아와 영유아, 청소년에게 필요한 규격이 각각 다르다. 하지만 규격별 사용량은 적어 업체가 제품을 별도로 생산하거나 해외에서 들여와 판매하기가 쉽지 않다.

가격도 문제다. 곽 총무이사에 따르면 소아용 제품은 수요가 적고 생산·수입 비용은 많이 드는 반면 국내에서 인정되는 치료재료 가격은 낮아 채산성을 맞추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결국 업체가 생산이나 수입을 포기하면서 공급이 끊기는 사례가 발생한다.

실제 소아흉부외과에서는 심장 수술에 사용하는 여러 규격의 캐뉼라 공급이 반복적으로 중단되고 있다. 캐뉼라는 혈액을 심폐기에 연결하거나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약물을 주입하는 데 사용하는 가느다란 관이다. 특히 신생아와 영유아에게 사용하는 캐뉼라를 비롯해 환아의 체중에 따라 필요한 여러 규격의 제품이 공급 불안을 겪고 있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제작된 의료기기가 공급 중단 위기에 놓인 사례도 있다. 소아정형외과에서 사용하는 ‘교합 신연 금속정(ITR·Interlocking Telescopic Rod)’이 대표적이다. 뼈 안에 삽입한 금속정이 아이의 성장에 맞춰 길어지는 장치로, 뼈가 쉽게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 환자의 반복적인 골절과 뼈 변형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다. 국내에서는 서울대어린이병원 연구진이 개발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지만 환자 수가 적고 가격이 낮아 생산 중단 위기에 놓여 있다. 생산이 중단되면 해외 제품을 수입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대체할 방법이 없다.

비슷한 공급난은 소아성형외과와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비뇨의학과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조직확장기와 실리콘 슬링, 프레넬 프리즘, 인공 등골, 영아용 요관카테터·스텐트 등 소아 진료에 필요한 제품의 규격이 줄거나 수입·생산이 중단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곽 총무이사는 이 같은 문제가 ‘적은 수요→생산·수입 기피와 낮은 치료재료 가격→공급 중단→대체 수술법 적용→환아·보호자·의료진 부담 증가’라는 공통된 구조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개별 제품의 일시적인 품절이 아니라 소아 필수의료 전반의 구조적 문제라는 설명이다.

의료계에서는 시장에만 맡겨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아 전용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에 별도의 수가 체계를 마련하고, 수요가 적지만 반드시 필요한 품목은 정부가 비축하거나 공급업체에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곽 총무이사는 “소아 전용 규격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에 대한 별도의 수가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저수요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공급 안정화 제도를 검토하고 개별 병원이나 학회를 넘어 범국가적인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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