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일 땐 멀쩡하던 흙, 아파트 땅 되자 왜 오염토가 됐을까[판례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22일, 오전 12:31

[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공장이나 주유소가 있던 땅도 언젠가는 개발된다. 수용을 거쳐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한다. 그런데 땅속에 스며든 오염은 주인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는다. 몇 년 뒤 정화비용 청구서가 옛 주인 앞으로 날아온다. 그 금액을 누가, 어디까지 부담해야 할까.

(사진=나노바나나)
(사진=나노바나나)
1977년, 지금의 경기 의왕시 논밭 한 자락에 기계공장이 들어섰다. 창업자가 개인 사업으로 시작했고, 1988년 법인을 세우면서 땅과 공장 명의가 회사로 바뀌었다. 2019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주택지구 사업을 위해 그 땅을 수용할 때까지, 회사는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기계를 만들었다. 2022년 2월 LH는 아파트를 지으려고 터를 파다가 오염이 의심되는 토사를 발견했다. 정밀조사 결과 기준치를 넘는 구리·아연·불소와 석유계총탄화수소(기름 성분)가 검출됐다. 오염 면적은 7천여 ㎡, 깊이는 최대 4.5m에 이르렀다. LH가 이 땅을 포함한 8필지를 묶어 발주한 정화용역은 41억 원 규모였다. 그중 이 회사 땅 몫으로 잡힌 8억 505만 원을 LH가 청구하자, 회사는 돈을 지급하고는 곧바로 그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고, 항소심도 같은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달리 보았다. 회사가 정화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고 본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판단의 기준은 ‘지목’이었다.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르면 오염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지목마다 다르다. 논밭이나 대지는 엄격한 1지역 기준, 공장용지는 느슨한 3지역 기준이다. 사람이 사는 땅일수록 흙을 깨끗이 해두라는 뜻이다. 이 땅에서 나온 오염물질은 공장용지 기준으로는 대체로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기에 1지역 기준이 적용됐고, 파내야 할 흙이 그만큼 불어났다.

원심은 회사가 40년 넘게 공장을 돌리며 땅을 오염시켰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오염시킨 사람이 비용을 최종 부담하는 것이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 맞고 공평의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1지역 기준을 적용한 데에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다만 누가 얼마를 낼지는 다른 문제로 보았다. 기준이 올라간 것은 LH가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고, 그 기준에 맞춰 땅이 깨끗해지면 그 이익은 LH에 돌아간다. 회사로서는 공장용지로 써 온 땅에 주거지 기준이 적용되리라고 예측하기 어려웠다. 손실보상금을 정할 때 정화비용을 고려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은 부담 부분을 정할 때 이런 사정을 충분히 참작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토양환경보전법령에 따르면 누가 먼저 정화 책임을 지는지 순서가 정해져 있다. 오염을 일으킨 사람이 맨 앞이다. 오염원이 된 시설의 점유자·운영자와 소유자가 그다음이고, 오염된 땅을 지금 가진 사람은 맨 뒤다. 대법원은 이 순서를 근거로, 앞 순위 책임자가 비용을 최종 부담하고 뒷 순위 책임자에게 그 비용을 되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먼저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기책임과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앞 순위가 뒷 순위에게 되받을 수 있는 예외도 있다고 했다. 이 사건이 그런 예외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로써 누가 오염시켰는지와 얼마를 부담해야 하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가 됐다. 정화 책임을 누구에게 먼저 지울지는 빠른 정화가 목적인 공법의 몫이다. 반면 그 비용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나눌지는 형평을 따지는 민사법의 몫이다. 대법원은 지목과 실제 이용 현황이 어긋난 경우 현황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판단도 함께 내놨다. 1982년 시흥군은 이 땅의 지목을 공장용지로 바꾸기로 결의하고도 토지대장에는 ‘대’로 적었다. 관청이 토지대장의 지목을 공장용지로 고친 것은 2024년이었다.

공장이나 주유소, 정비소가 있던 땅을 가진 사람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그 땅이 개발되는 순간 적용 기준이 올라가고 정화비용이 몇 배로 뛸 수 있다. 매매라면 계약서에 토양조사와 비용 부담을 미리 정해 둘 수 있다. 그러나 수용에는 그럴 여지가 없다. 대법원이 보상금을 정할 때 정화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사정을 참작 사유로 든 것은 그래서다. 사업시행자도 마찬가지다. 오염을 일으킨 사람이 따로 있으니 정화비용 전액을 옛 소유자에게 청구하면 된다는 계산은 이제 그대로 통하기 어렵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