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환수한 친일파 땅 절반도 못팔아…독립유공자 지원금 마련 막막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26일, 오전 05:36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부터 환수한 재산이 독립유공자 지원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환수한 부동산 상당수를 매각하지 못해서다. 전체 환수 부동산 중 매각된 규모는 27%(면적 기준)에 그친다. 금액 기준으로도 절반 수준이다.

올해 새로 팔린 땅은 3필지(1억원 상당)에 불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친일재산으로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을 돕겠다고 밝혔지만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 지원을 위한 재원마련은 요원한 현실이다.

친일재산으로 환수된 충북 청주시 당산공원 조감도 (사진=청주시)
친일재산으로 환수된 충북 청주시 당산공원 조감도 (사진=청주시)
◇매각대금 8분의 1 토막…사실상 자금 환수 無

25일 이데일리가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국가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국가에 귀속된 친일재산은 1600필지, 넓이는 874만 5026㎡(264만 5370평)다. 축구장 1200개가 들어설 수 있는 땅이다. 이 가운데 781필지가 팔렸다. 필지 수로 보면 48.8% 정리됐지만 총 매각 면적은 239만 7717㎡(72만 5309평)로 전체의 27.4%에 그친다.

문제는 매각 속도가 급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귀속재산 매각대금이 순국선열·애국지사사업기금에 들어온 금액은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236필지, 485억원이다. 연도별로는 2016년 91억원에서 작년 12억원으로 8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는 1억원에 그쳤다. 기금 자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6년 81%에서 지난해 11%로 약 7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기금 수입(112억 700만원)의 내역을 보면 친일재산 매각대금은 12억 3600만원에 불과하다. 광복회관 임대수입(40억 6800만원)의 3분의 1도 도지 않는 수준이다. 기금 비중에서 친일재산을 팔아 번 돈보다 건물 임대료가 더 많은 셈이다.

열한 차례 유찰된 친일귀속재산 두곳. 왼쪽은 충남 청양군 청양읍 적누리 219-1 대지(132㎡), 오른쪽은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 940 임야(60㎡)로 붉은 원 안이 매각 대상 필지다. (사진= 온비드)
열한 차례 유찰된 친일귀속재산 두곳. 왼쪽은 충남 청양군 청양읍 적누리 219-1 대지(132㎡), 오른쪽은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 940 임야(60㎡)로 붉은 원 안이 매각 대상 필지다. (사진= 온비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재 매각하지 못한 부동산 대부분이 환금성이 낮은 애물단지이기 때문이다. 이데일리가 캠코 공매 플랫폼 온비드에 올라온 보훈부 매각 친일재산 분석한 결과 7~8차례 유찰된 부동산이 상당수였다. 매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유찰된 땅은 11회 유찰된 두 곳이었다. 충남 청양군 청양읍 적누리의 132㎡짜리 대지와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의 60㎡짜리 임야다. 적누리 대지는 감정가 567만 6000원에서 454만 1000원까지, 방문리 임야는 168만원에서 134만 4000원까지 값을 내렸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매각 주체인 보훈부도 환금성의 한계를 인정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입찰을 진행 중이지만 유찰이 이어지는 것은 부동산의 매력도가 낮기 때문”이라며 “관심을 가질 만한 부동산은 대부분 매각됐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말했다.

남은 땅의 성격도 걸림돌로 꼽았다. 이 관계자는 “미매각 토지의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산지”라며 “개인이 사기에는 너무 넓고 접근성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그래픽= 이미나 기자)
◇절반은 아예 못 파는 땅…“사달라” 공문에도 매각 어려워

더 큰 벽은 미매각 환수재산 중 아예 팔 수 없는 땅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이다. 보훈부에 따르면 남은 819필지 중 448필지는 하천·도로·국유림·공원 등으로 이미 쓰이고 있어 법령상 개인에게 매각할 수 없다. 이런 땅은 지방자치단체나 산림청처럼 실제 관리하는 기관이 사들여야 현금화가 가능하다. 보훈부는 해당 기관에 매입을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지방정부는 사고 싶어도 예산이 많지 않아 한계가 있다”며 “법적 근거가 없으니 강제 매입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보훈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령 정비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 관계자는 “법령을 만들려면 중앙부처 뿐만 아니라 지자체 의견까지 다 들어야 하는데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라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귀띔했다.

친일재산으로 보훈부에 환수된 충북 청주시 당산공원이 대표 사례다. 보훈부는 올해 4월 말과 8월 초 두 차례 청주시에 매입을 요청했지만 청주시는 다른 사유지 공원 매입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재산권 침해를 호소하는 사유지 공원과 달리 국유지는 시민들이 등산로로 이용해도 항의하는 시민이 없으니 매입 순위에서는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다”라며 “지자체 재정이 한정적이라 국유지 매입을 우선순위에 두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오는 12월 3일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재출범해도 같은 구조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법무부는 이번 2기 위원회에서 최소 325억원 규모를 추가 환수해 순국선열·애국지사사업기금(순애기금)에 우선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환수 결정만으로는 장부에 적힌 금액만 늘어날 뿐 실제 기금규모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이에 따라 매각이 어렵다면 토지 임대료라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거론된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공원·도로 등으로 쓰고 있는 땅에 대부료를 물리는 방식이다. 신 의원은 “정부는 친일재산 환수라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환수재산을 적극적으로 매각하고 유찰 토지의 임대 활용 등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재산 환수’만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결국 독립유공자에게 실제로 쓸 수 있는 가용 재산을 늘리는 게 중요하지, 재산을 얼마나 많이 환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환수 액수에만 집중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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