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2026.8.21 © 뉴스1 김진환 기자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69·사법연수원 13기)이 제청한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조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청하면서 68년 전 이승만 정부 시절 대법원장 제청 반려 사례가 재조명되고 있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28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노태악 전 대법관(64·16기) 후임으로 제청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61·22기)에 대한 제청을 반려하고 이흥구 대법관(63·22기) 후임으로 제청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58·24기)에 대한 임명동의안만 국회에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987년 현행 헌법이 탄생한 이후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재제청 사태'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는 지난 26일 페이스북 게시글에 '데자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저서 '가인(街人) 김병로'에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대법원장 제청 거부 사건을 소개했다.
당시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의 보직은 대법원장, 대법관, 각 고등법원장으로 구성된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이를 행한다'고 규정했다.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퇴임을 앞둔 1957년 11월,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관회의가 열렸다. 김동현 전 대법관이 11표 중 9표를 받으면서 법관회의는 김 전 대법관을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8년 1월 법원행정처장 앞으로 "귀하가 대법원장으로 제청한 김동현 씨는 임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짧은 내용을 담은 문서를 전달하며 임명을 거부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은 이우익 당시 자유당의 경북도당위원장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해달라고 법관회의에 요구했다. 그러나 법관회의는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을 사법부 수장으로 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사법부는 다시 법관회의를 열었고 1958년 1월 조용순 전 대법관을 뽑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법관회의의 2차 제청에도 곧바로 임명하지 않고 법원조직법 개정을 시도하다가 법조계의 반발에 부딪혀 4개월이나 지난 1958년 6월에야 국회에 대법원장 승인 요청을 보냈다.
한인섭 교수는 책에서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졌다고 하지만 국법상 독립한 사법기관의 유효한 법적 행위를 대통령이 하등의 법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국가기관 상호존중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더욱이 사법부 독립과 3권 분립에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의 횡포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적었다.
정 변호사는 "임명권이 제청권을 압박하기 시작하면 제청권은 형해화된다"면서 "역사에는 따라야 할 선례가 있고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분립은 서로의 권한을 인정하고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대방의 헌법적 권한 앞에서는 자제하라는 명령"이라며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법관 서면 제청과 관련해 '어떤 법리적 검토를 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임명권 자체가 실질적인 심사 재량을 내포하고 있다"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귀속되지 않는 권한으로 재제청을 요청할 수 있다'라고 법률 검토 이후에 내린 결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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