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출근길 위해"…밤새 철로 위 걷는 사람들 [땀.땀.땀.]

사회

이데일리,

2026년 8월 30일, 오전 12:02

빛나는 무대 뒤편,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숨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땀.땀.땀.]은 우리 사회 곳곳의 최전선에서 정직한 노동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터를 찾아갑니다. 화려한 결과에 가려져 자각하지 못했던 현장의 숨은 가치 그리고 그곳에 흐르는 진짜 프로들의 땀방울을 기록합니다. <편집자 주>

궤도2사업소 작업자들이 청담대교 위에서 랜턴을 비추며 선로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궤도2사업소 작업자들이 청담대교 위에서 랜턴을 비추며 선로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이데일리 김주환 기자] “현재 전차선 단전 확인됐습니다. 관제 승인 완료. 선로 진입합니다.”

폭염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8월의 깊은 밤, 서울 지하철 7호선 자양역. 마지막 열차가 승객을 모두 내려놓고 회송선으로 향하자 역사에는 일순간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승강장이었지만 1000만 시민의 발길이 멈춘 자리는 전혀 다른 공기가 감돌았다. 운행이 끝나자마자 역사는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일터로 탈바꿈했다. 바닥을 닦는 환경미화원부터 스크린도어 정비원, 모터카를 운용하는 특수 장비팀까지 새벽의 궤도를 지탱하는 손길들이 텅 빈 승강장을 채워 나갔다.

승강장 끝자락,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육중한 선로 차단문이 열렸다. 무전기 너머로 단전 신호가 떨어지자 형광 안전조끼를 입고 안전모 턱끈을 조여 맨 서울교통공사 궤도2사업소 직원들이 어둠 속 선로로 발을 내디뎠다. 본지는 자양역에서 청담역으로 이어지는 청담대교 하부 궤도 정비 현장에 동행했다.

열차 운행이 종료된 새벽 1시 정적이 흐르는 7호선 자양역 궤도 전경. (사진=김주환 기자)
열차 운행이 종료된 새벽 1시 정적이 흐르는 7호선 자양역 궤도 전경. (사진=김주환 기자)
선로로 내려서자 발목이 푹푹 꺾였다. 평평한 보도가 아닌 침목 사이 울퉁불퉁한 도상 자갈을 밟고 걷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하체에 큰 부담을 줬다. 터널 안쪽에서 밀려드는 눅진한 열기와 쇳가루 냄새, 기름때 섞인 공기가 일순간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궤도는 열차가 달리는 길입니다. 레일에 단 1mm의 유격이나 변형만 생겨도 수백 명이 탄 열차의 안전과 승차감이 무너집니다.” 방태원 궤도2사업소 관리소장이 랜턴 불빛으로 선로를 비추며 걸음을 재촉했다.

현재 서울교통공사 궤도 부서는 750여 명의 인력이 24개 검사팀과 4개 장비관리팀으로 나뉘어 24시간 철길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선로에 진입한 직원들이 청담대교 교량 하부에서 야간 점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선로에 진입한 직원들이 청담대교 교량 하부에서 야간 점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AM 01:30, 청담대교 궤도…‘19개 이음매’와 ‘mm’의 사투

자양역 터널을 빠져나와 청담대교 복층 궤도 구간에 들어서자 시야가 급변했다. 그물망처럼 얽힌 철골 틈새로 검은 한강 물빛이 발밑에서 일렁였다. 겨울에는 칼바람에 맞서 온열 조끼로 버티고 여름에는 달궈진 철골의 열기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극한의 작업대다.

“청담대교 구간은 구조가 특이합니다. 과거 20m짜리 레일 이음매의 덜컹거림을 줄이고자 레일을 전부 용접해 하나로 이었지만 교량 위는 기온 변화에 따른 팽창과 수축이 유독 심하죠. 그래서 레일의 늘어남과 줄어듦을 흡수하는 ‘신축이음매’가 이 다리에만 19곳이나 설치돼 있습니다.” (강봉구 궤도처 차장)

작업자들이 선로 위에서 초음파 레일 탐상기를 설치하며 비파괴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작업자들이 선로 위에서 초음파 레일 탐상기를 설치하며 비파괴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열차가 선로를 갈아타는 ‘분기기’는 궤도 점검에서 가장 민감한 급소로 꼽힌다. 방 소장은 점검용 망치로 레일을 연신 두드렸다.

“낮에는 2mm만 처져도 눈에 들어옵니다. 망치로 때려보면 맑은 쇳소리가 나지 않고 탁한 소리가 나 균열을 바로 감지하죠. 변위 센서 데이터가 실시간 관제로 들어가지만, 현장에서는 사람의 손과 귀로 한 번 더 확인해야 안심이 됩니다. 분기기는 궤도 기술의 모든 지식이 집약된 시설물입니다.”(방태원 궤도2사업소장)

작업자들이 초음파 탐상기를 활용해 내부 결함 여부를 실시간으로 탐측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작업자들이 초음파 탐상기를 활용해 내부 결함 여부를 실시간으로 탐측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공호연 궤도2사업소 대리가 궤도 검측 장비를 활용해 선로 궤간과 수평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공호연 궤도2사업소 대리가 궤도 검측 장비를 활용해 선로 궤간과 수평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공호연 궤도2사업소 대리는 최신 궤도 선형검측기를 밀며 레일의 궤간, 높이차, 뒤틀림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공 대리는 “열차 진행 방향으로 걸으며 양쪽 레일의 높낮이와 굴곡을 mm 단위로 잰다”며 “예전에는 수동으로 기록했지만 지금은 자동으로 저장된 데이터를 노트북 엑셀로 변환해 정밀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교량 구간을 지나 다시 지하 터널로 들어서자 뿜어져 나오는 습기는 찜통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대원들의 작업복은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도심 불빛 아래 철교 위를 걸으며 선로 시설물의 이상 유무를 살피는 점검반의 모습. (사진=김주환 기자)
도심 불빛 아래 철교 위를 걸으며 선로 시설물의 이상 유무를 살피는 점검반의 모습. (사진=김주환 기자)
◇AM 03:00, “볼트 하나도 못 둔다”…촉박한 새벽 레이스

작업 시간은 냉정할 정도로 촉박하다. 단전 절차가 최종 완료된 새벽 1시 30분부터 첫차 준비를 위해 선로를 비워야 하는 새벽 4시까지, 순수하게 주어지는 시간은 2시간 30분 남짓이다.

“이동 시간과 장비 복귀 시간까지 계산하면 1초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1분이라도 늦게 빠져나가면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출근길 전체가 멈춰 서니까요.” (오인철 궤도2사업소 대리)

체결구를 조이고 교체하는 작업 도중 가장 엄격하게 지켜지는 철칙은 ‘공구의 완벽한 회수’다. 선로 위에 떨어진 작은 스패너 하나, 여분의 볼트 한 개가 시속 70~80km로 달리는 열차와 부딪히면 대형 탈선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이 끝난 자리마다 대원들은 랜턴을 비추며 바닥을 두 번, 세 번 훑었다.

직원들이 청담역으로 이어지는 터널 안에서 궤도 체결구와 레일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직원들이 청담역으로 이어지는 터널 안에서 궤도 체결구와 레일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하지만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노동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주간-야간-비번-휴무’ 4조 4교대 특성상 만성 수면 부족과 위장 장애가 뒤따른다. 환기가 제한된 터널 내 미세먼지와 쇳가루 분진은 호흡기를 위협하고 일부 역사는 구내식당조차 없어 끼니를 챙기기도 쉽지 않다.

방태원 소장은 “1~4호선 등 노후 노선이 늘어날수록 유지보수 소요는 급증한다”며 “현장 안전을 지켜낼 스마트 장비 확대와 체계적인 인력·예산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울교통공사 궤도2사업소 직원들이 정비 차량에 탑승해 점검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서울교통공사 궤도2사업소 직원들이 정비 차량에 탑승해 점검 위치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AM 04:00, 다시 닫힌 철문…하루를 여는 사람들

새벽 4시 정각, 점검을 마친 대원들과 취재진이 자양역 승강장으로 무사히 복귀했다. 선로 출입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굳게 닫히고 곧이어 전차선에 다시 고압 전류가 공급됐다는 무전이 울렸다.

안전모를 벗자 대원들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몇 시간 뒤면 수많은 시민의 평온한 일상을 품은 첫 열차가 이 철길 위를 달릴 것이다.

한 작업자가 선로 위에서 소형 랜턴으로 레일 표면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한 작업자가 선로 위에서 소형 랜턴으로 레일 표면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김주환 기자)
“화려한 무대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를 세우는 수많은 스태프가 있잖아요. 저희 궤도도 딱 그 역할입니다. 비록 조명받는 자리는 아닐지라도 매일 아침 시민들이 아무 탈 없이 열차를 타고 일터로 향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 무사한 하루라면 우리는 충분합니다.”

땀으로 젖은 얼굴을 닦아내며 미소 짓는 방태원 소장의 뒤로 어둠을 뚫고 첫차를 맞이할 준비를 마친 7호선의 은빛 레일이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