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중 사회정책부 부장
웹사이트 작업도 AI가 일정에 따라 수행한다. 필요한 사이트에 로그인만 해주면 거래처 발주 등 모든 작업을 24시간 동안 AI 스스로 진행한다. 중소기업 한 곳이 감당하던 일이 책상 위에서 끝난다.
이런 시대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질문은 무거운데 답을 내기 쉽지 않다.
다행히 정부는 정답을 고르는 교육만으로 AI 시대를 살아갈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수능 서·논술형 도입 국민숙의를 진행했다. 수능의 서·논술형 도입 자체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문제의식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다. 변화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논의가 시작된 건 반갑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벽은 서열화 된 대입 제도다. 평가 방식과 채점 기준을 대입제도에 끼워 맞추다보면 서술형 문제 역시 정답을 외우는 교육에 포함될 위험이 있다.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인간만의 자산은 전체적인 구상 능력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면 흩어진 정보의 논리적 연관성을 이어가는 추론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세계 1위 바둑기사인 신진서 9단이 AI를 다루는 방식과 닮았다. AI는 착수에 이유를 대지 않는다. 신진서 9단은 그 수를 앞에 두고 어떤 조건에서 최선인지를 거꾸로 캐묻는다. 수많은 대국을 거꾸로 읽어봤기에 AI 착수를 판별하고 고정관념을 파훼했다. 압도적인 AI 능력에 휘둘리지 않고 정보를 추론해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
이 방식을 교육에 대입하면 길이 어느 정도 보이긴 한다.
예를 들어 "뉴턴의 운동법칙을 설명하시오"라는 서술형 문제는 외운 정의를 문장으로 옮기면 끝난다는 점에서 객관식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같은 소재를 이렇게 물으면 달라진다.
"우주가 완전한 진공이라고 가정했을 때 우주선은 엔진을 끈 뒤에도 일정한 속도로 계속 나아간다. 반면 자동차는 시동이 꺼지면 곧 멈춰 선다. 두 현상이 서로 모순돼 보이는 이유를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설명하시오."
이 문제는 법칙을 외웠는지를 묻지 않는다. 모순이 아니라 조건의 차이임을 학생이 짚어내야 한다. 관성은 두 경우에 똑같이 작용하고 있으며, 다른 요인은 마찰과 공기저항이라는 외력의 유무다.
우주선에는 운동을 방해하는 힘이 없어 등속운동이 유지되고, 자동차는 엔진이 멈추는 순간 마찰력만 남아 감속한다. 법칙을 아는 것과 눈앞의 두 현상을 법칙 아래 나란히 놓는 건 다르다. 두 정보의 논리적 연관성과 차이를 판별해야 적절한 답이 가능하다.
생각을 뒤집어 본다면 서술형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디지털 SAT처럼 추론과 근거 활용을 별도의 객관식 평가로 만들어 시험을 고도화하는 게 가능하다. 지문에 가설이나 주장을 제시하고 어떤 결과가 이 가설을 지지하는가를 묻는 식이다.
다만 어떤 방식을 설계하든 시험 나아가 입시제도에 변화를 주기 때문에, 문제 출제절차와 문항 설계 주체 그리고 채점 기준 및 신뢰성 확보 등과 관련된 복잡한 고민이 필요하다.
1박 2일간의 국민숙의에서 해답이 나올 순 없다. 이 짧은 글에서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만큼 AI 시대는 도전적이고 수십년 지속된 기존 교육 제도의 관성은 단단하다.
이 문제를 머리를 맞대 잘 풀어가길 바란다고 끝맺는 건 또 무책임하다.
그래서 AI 시대에 적합한 교육 과정과 시험 방식을 전담 연구할 정부 직속 연구기관 설립을 제안한다.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한국교육개발원 등이 있지만 부처 발주 과제를 수행하는 기존 구조로는 한계가 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매년 시험 출제와 시행에 묶여 있어 장기 설계 연구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AI 강국으로 가는 길에는 반도체 투자 못지않게 인재 즉 교육도 중요하다. 분명한 건 인력과 재원 투입을 아까워 할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haezung2212@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