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보다 두려운 '그 이후'…직장인 72% "신고땐 2차피해 우려"

사회

이데일리,

2026년 9월 06일, 오전 12:03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직장인 10명 중 7명은 직장 내 성범죄를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은 10명 중 8명 가까이 2차 피해를 우려했다. 회사가 자신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해줄 것이라는 응답은 절반을 겨우 넘겼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 챗GPT)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 (사진= 챗GPT)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1일부터 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내 성범죄 경험 및 2차 피해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신고했다가 되레 피해 볼라…여성 77% “2차 피해 우려”

조사 결과 직장 내 성범죄를 신고하거나 문제를 제기했을 때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한 직장인은 72.3%였다. 여성은 77%로 남성보다 우려가 컸다.

2차 피해를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보호조치에 대한 불신이었다. ‘가해자와의 분리조치나 피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37.2%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있어서’라는 답변도 36.2%에 달했다.

주변 동료가 2차 피해를 겪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료의 2차 피해를 목격할 경우 향후 자신의 신고나 문제제기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응답은 65.4%였다. 여성은 72%로 남성(60.1%)보다 11.9%포인트 높았다.

2차 피해를 목격한 뒤 예상되는 행동으로는 ‘타인의 피해를 알아도 개입을 피할 것 같다’(35.6%)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 등 다른 부당한 일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할 것 같다’(35.2%), ‘이직이나 퇴사를 준비할 것 같다’(35%)는 답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성희롱 당해도 10명 중 4명 “참거나 모른 척”

직장 내 성범죄를 실제로 경험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재직 중 성희롱을 경험한 직장인은 20.3%로 5명 중 1명꼴이었다. 유형별로는 ‘언어적 성적 언동’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13.4%로 가장 많았다.

성희롱 경험자 203명 가운데 피해가 ‘심각했다’고 답한 비율은 46.8%였다. 여성은 53.7%로 남성(40.7%)보다 13%포인트 높았다. 그러나 피해 이후 대응 방식으로는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는 응답이 40.9%로 가장 많았다.

성추행·성폭행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전체의 15.4%였다. 경험자 154명 가운데 53.9%는 피해가 ‘심각했다’고 답했다. 진료나 상담이 필요했지만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58.4%였고, 자해나 죽음을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27.9%에 달했다. 직장 내 스토킹을 경험했다는 직장인은 13.9%였다.

피해 발생 이후 회사가 자신을 제대로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높지 않았다. ‘회사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응답은 59.2%에 그쳤다.

특히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가 컸다. 회사의 보호를 신뢰한다는 여성은 49.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남성은 67%였다. 격차는 17.6%포인트였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 낮았다. 정부가 직장 내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응답은 47%에 불과했다. 남성은 56.6%였지만 여성은 35%에 그쳐 성별 격차가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직장인들은 2차 피해를 막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 책임이 회사에 있다고 봤다. 2차 피해 예방과 안전한 일터 환경 유지의 책임 주체로 ‘사용자(대표·임원·경영진)’를 꼽은 응답이 39.8%로 가장 많았다. 직속 관리자(28.6%), 고충처리 담당 부서(14%)가 뒤를 이었다.

가장 시급한 개선책으로는 ‘가해자 및 2차 가해 행위자에 대한 엄격한 징계 기준 마련’(48.6%)이 꼽혔다. ‘가해자와의 신속하고 확실한 분리조치’(46.5%)가 뒤를 이었다.

여수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내 성희롱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해자 징계 여부에만 초점을 두는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피해 근로자의 안전한 복귀와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둔 공동체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처리에 사후 모니터링과 조직문화 진단이 반드시 병행되도록 하고,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