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에 직원들이 게시한 '난곡동 할매께'란 제목의 답장글. 8월 26일 스스로를 '난곡동 할매'로 지칭한 80대 여성이 영등포역을 찾아 과거 무임승차를 고백하고 자필 편지와 함께 현금 500만 원을 건네자 직원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역사 내 답장을 게시했다.2026.09.15.© 뉴스1 강서연 기자
'언제든 영등포역에 찾아와 주세요. 따뜻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의 기차역으로 올라가는 길목. '난곡동 할매께'란 제목으로 써 내려간 22줄의 편지글이 바삐 지나가던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알림판 앞에 멈춰 서 있던 김 모 씨(58·여)는 "라디오에서 이 사연을 들었는데 영등포시장에 갈 일이 있어 들렀다. 서로 주고받는 마음이 참 따뜻한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영등포역 직원들은 지난 13일 오전 '난곡동 할매'에게 보내는 답장을 역사 내에 붙였다. 이곳을 포함해 총 3곳에 붙은 편지글은 추석 연휴 끝자락인 27일쯤까지 자리를 지킬 예정이다.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서부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80대 할머니가 영등포역을 찾아 자필 편지와 함께 현금 500만 원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바로 난곡동 할매였다.
서툰 맞춤법으로 꼭꼭 눌러쓴 할머니의 편지에는 48년 전 영등포역에서 무임승차를 했다는 고백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 탓에 당시 약 500원이었던 아들의 승차권을 사지 못하고 함께 열차를 탔다.
할머니는 당시 일이 오랜 세월 마음의 빚으로 남아 찾아왔다며, 자신의 신원은 끝내 숨긴 채 아들 고(故) 김백철 씨의 이름으로 돈을 기부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이승연 영등포역 역무팀장은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신 채 신문지 뭉치를 종합안내소 창구에 밀어 넣고는 도망치듯 떠나셨다"며 "달려 나가 여쭤봐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셔서, 뭉치를 열어 보여달라고 하니 돈을 갖고 오신 사연을 설명해 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팀장은 "5만 원권 100장이 뭉치로 있기에 처음엔 당황스러웠다"면서도 "지금은 병환으로 세상을 떠난 아드님과 과거 무임승차 후 이제 빚을 갚으려 오셨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욕심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편지를 통해 "1978년 10월 돈이 없어 정읍에서 영등포까지 초등학생이었던 아들 표는 사지 않고 완행열차를 탔다. 이 돈을 죽기 전에 갚겠다고 다짐했는데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전했다.
한국철도공사 수도권 서부본부에 따르면 8월 26일 스스로를 '난곡동 할매'로 지칭한 80대 여성이 영등포역을 찾아 과거 무임승차를 고백하고 자필 편지와 함께 현금 500만 원을 건넸다. 사진은 영등포역이 보관 중인 여성의 자필 편지.2026.09.15.© 뉴스1 강서연 기자
영등포역 직원들은 편지를 읽고 눈가를 닦았지만 돈을 기부해 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은 내부 규정상 들어줄 수 없었다. 대신 직원들은 할머니를 향한 감사의 마음을 널리 알리기로 결심했다.
직원들은 역사 곳곳에 편지 답장 글을 게시하고 "그날 어머니께서 영등포역에 건네주신 용기와 따뜻한 마음, 큰 감동 덕분에 매일을 선물처럼 보낸다"며 화답했다.
이 팀장은 "이번이 아드님 없이 보내시는 첫 명절일 텐데 할머니가 추석을 외롭지 않게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며 "답장을 보셨을지는 모르지만 난곡동에 유명한 할머니가 계신다는 따뜻한 소문은 퍼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영등포역을 지나던 서 모 씨(40대·여)는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선행이 나중에 크게 돌아오는 걸 보니 마음이 따뜻해진다"며 "사연을 들으니 저도 주변의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할머니의 마음을 본받은 직원들이 각자 이름으로 기부하는 경우도 있었고, 할머니가 주신 돈은 주변의 어려운 분들을 다시 돕는 데 쓸 수 있도록 본부에서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bea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