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차' 영상으로 꼬시고 뒤에서 웃는 도박업자…텔레그램의 수상한 공생

사회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5일, PM 07:03

[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수위 높은 야차 영상과 미공개 야차 영상은 VIP 방에서.”

지난달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의 한 채널 운영자가 ‘고수위’ 야차 영상을 별도 VIP방에서 제공하겠다며 내건 문구다. VIP방에 입장하려면 제휴된 불법도박사이트 채널 추천코드로 가입한 뒤 운영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더 자극적인 야차 영상에 접근할 기회를 도박사이트 가입의 대가처럼 제시한 셈이다.

지난달 24일 텔레그램 A채널에 올라온 ‘잼민이들의 길거리 야차’ 영상. 게시물 아래에 ‘광고 제휴업체’라는 문구와 불법 도박사이트 링크 2개가 함께 삽입돼 있다. (사진=텔레그램 갈무리)
지난달 24일 텔레그램 A채널에 올라온 ‘잼민이들의 길거리 야차’ 영상. 게시물 아래에 ‘광고 제휴업체’라는 문구와 불법 도박사이트 링크 2개가 함께 삽입돼 있다. (사진=텔레그램 갈무리)
청소년들 사이에서 보호장구와 규칙 없이 싸우는 야차룰 영상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행하는 가운데 불법 도박사이트가 야차 영상 유통의 ‘광고주’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온라인에서 놀이처럼 소비되던 야차룰의 위험성은 지난 5월 충북 청주에서 20대 여성이 10대 여성 2명과 잇달아 싸우도록 강요받은 뒤 숨진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텔레그램 채널주들이 야차 영상으로 이용자를 모은 뒤 미공개 영상을 내세워 도박사이트 가입을 유도하고, 도박사이트 운영업체가 광고비로 채널 운영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야차 영상 보려면 도박사이트 가입해라?

15일 이데일리가 취재를 통해 한 달간 텔레그램 채널 A, B, C 등 3곳과 연결된 소통방·광고·제휴채널 10여곳을 살펴본 결과 모든 채널에서 싸움영상으로 모은 이용자를 도박업체에 연결하는 운영 방식이 확인됐다.

구독자 수가 1만 1600명으로 가장 많았던 A채널에 한 달 동안 올라온 싸움영상 표본 20건에는 모두 베팅업체 링크 2개가 삽입돼 있었다. 이 중 15건의 제목·설명에는 ‘잼민이’, ‘급식’, ‘학교·교실’ 등 청소년을 나타내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담겼다. 구독자 7774명 규모의 B채널에서도 야차 영상을 올리면서 해당 채널에 연결된 소통방·홍보방·제휴리스트·공지채널로 이용자를 연결했다.

야차룰 영상 공유 뒤에는 VIP방을 안내하며 가입을 유도했다. 채널 운영자는 제휴 베팅사이트에 자신이 제공한 추천코드로 가입한 뒤 운영자에게 연락하면 ‘수위가 높은 야차 영상’과 ‘미공개 야차 영상’을 제공한다고 홍보했다. 여기에 더해 ‘먹튀 시 100% 환불’까지 보증하며 도박 사이트 가입을 적극 홍보했다.

채널주들은 싸움 영상 공유 채널의 주요 수익원이 ‘도박사이트’의 제휴 비용이라고 설명한다. 채널 운영자들은 도박사이트 광고 제휴비로 신규 야차 영상을 구매해 대화방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채널을 키우고 대화방에 유입된 사용자가 도박사이트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B채널 운영자는 “채널의 광고·홍보 수익 대부분을 홍보비·구독자 이벤트·제보비 등에 재투자한다”며 “우리 채널에 입점한 한 업체(도박사이트)가 영구제휴비 100만원을 냈고 다른 그룹·채널에서는 300만~400만원을 안내했다”며 구체적인 거래 금액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법조계는 이 같은 광고와 가입 유도는 채널 운영자뿐 아니라 제휴비를 내고 광고를 맡긴 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도 형사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성중 법무법인 창천 파트너 변호사는 “도박사이트임을 알면서 게시물마다 링크와 추천코드를 반복해서 노출하면 국민체육진흥법상 ‘유사행위 홍보’ 또는 구매 ‘중개·알선’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며 “VIP방 입장을 추천코드 가입 조건으로 내건 행위는 회원 유입이라는 도박사이트 운영의 핵심 역할을 맡은 것이다. 도박공간개설죄의 방조를 넘어 공동정범으로 평가될 여지도 있다”고 경고했다.

텔레그램 채널 ‘야차의 모든 것’이 지난 8월 12일 VIP방에 ‘수위가 높은 야차(싸움) 동영상’과 ‘미공개 야차(싸움) 동영상’을 올린다고 안내한 게시물. 하단에는 채널의 ‘광고 제휴업체’라며 카지노·스포츠베팅 사이트 링크를 함께 게시했다. (사진=텔레그램 갈무리)
텔레그램 채널 ‘야차의 모든 것’이 지난 8월 12일 VIP방에 ‘수위가 높은 야차(싸움) 동영상’과 ‘미공개 야차(싸움) 동영상’을 올린다고 안내한 게시물. 하단에는 채널의 ‘광고 제휴업체’라며 카지노·스포츠베팅 사이트 링크를 함께 게시했다. (사진=텔레그램 갈무리)
◇도박 이용자에서 모집책으로…싸움 영상 다시 만드는 청소년

야차 영상은 도박 광고에 대한 청소년의 경계심을 낮추고 사이트 유입을 유도하는 미끼로 활용된다. 싸움영상을 보려고 채널에 들어온 청소년이 게시물마다 붙은 도박 광고와 추천코드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더 자극적인 영상을 찾는 과정에서 도박사이트까지 이동하는 구조다.

고승환 남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 센터장은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청소년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홍보한다”며 “불법 웹툰이나 웹드라마처럼 야차 영상도 청소년의 관심사를 이용해 도박사이트로 끌어들이는 수단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차 영상을 통해 도박사이트에 유입된 청소년이 도박 모집책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흔하다는 게 현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순히 영상 시청을 하려다가 도박에 손을 댄 청소년이 도박자금이 부족해지면 ‘모집책’ 역할을 맡게 된다. 그들은 또 사이트 홍보에 쓸 야차 영상까지 직접 찍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조호연 도박없는학교 교장은 “도박 중독 치료를 받는 학생 10명가량이 복싱 등 운동을 배우기 시작해 이유를 확인했더니 야차 영상 촬영을 위해 무술을 배우고 있었다”며 “야차 영상이 매우 효과적인 도박 영업 수단이다 보니 직접 촬영하는 청소년들도 흔하다”고 설명했다.

정보기술업계 전문가는 최근 정부의 불법 포르노, 웹툰 사이트 차단이 엄격해지며 ‘야차 영상’이 폐쇄형 도박 영업망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새로운 미끼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송봉규 한세대 IT학부 융합보안전공 교수는 “과거에는 무료 드라마·영화나 불법 웹툰을 제공하는 사이트에 이용자를 모은 뒤 도박사이트로 이동시켰다”며 “최근 정부의 불법 공개 사이트 감시와 차단이 엄격해지면서 텔레그램 채널과 소통방으로 이용자를 끌어들인 뒤 VIP방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수법이 정교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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