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숙고해야" 한국천주교회, 임신중지약 단계적 도입에 우려 표명

사회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16일, PM 08:57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침을 공식화한 가운데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생명 경시 풍조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6일 ‘정부의 단계적 낙태 유도 약물 도입 방안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을 내고 “낙태를 ‘질서 있게’ 제도화할 뿐 그 본질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다”며 “오히려 생명 경시를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주교회의는 정부가 임신 9주 이하를 대상으로 임신중지 약물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초기 2년간 병원에서 처방과 조제를 함께한 뒤 향후 의사 처방과 약국 조제 방식으로 확대하려는 방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주교회의는 “절차의 정교함은 생명을 앗아가는 본질을 바꾸지 못한다”며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이 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임신 9주라는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주교회의는 “‘9주까지 허용한다’는 기준은 태아를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9주까지의 생명은 국가의 보호에서 제외한다’고 선을 긋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계적 도입 방안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교회의는 “‘단계적 도입’은 제한이 아니라 확대와 정착의 로드맵”이라며 “초기에는 병원이라는 통제된 틀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고, 이후 그 틀을 풀어 접근을 확대하는 방식은, 낙태약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고 일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 주장했다.

약국 조제 방식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주교회의는 “이번 방안의 2단계인 ‘약국 조제’는 바로 그 핵심 안전장치인 의사의 진찰을 제거한다”며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관리가 약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교회의는 임신중지 문제를 행정 방안만으로 정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고려한 입법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위기 임신 여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주교회의는 “정부가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은 낙태약을 확대하는 로드맵이 아니라, 위기에 놓인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지원의 로드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위기 임신 상담, 주거와 생계 지원, 의료와 돌봄, 성폭력 피해자 보호, 한부모 가정 지원, 출산 이후의 양육 지원을 단계적으로 확충하고, 남성의 공동 책임을 법적으로 강화해 달라”고 촉구했다.

주교회의는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가장 약한 생명을 없애 여성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사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가 이 방안을 다시 숙고해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여성을 실질적으로 돕는 길을 선택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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