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직후 발견된 A군 모습. 머리카락이 불규칙하게 밀려있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캡처)
A군은 같은 해 4월 14일 새벽 2시 30분쯤 중학교 동창 B(19)군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악연은 A군이 중학교 3학년 때 강원 삼척으로 전학을 오면서 시작됐다. B군과 친구들은 학창 시절 A군을 괴롭혔고,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길에서 A군을 만나면 이유 없이 폭행했다. B군은 지적장애 2급인 A군에게 학교폭력을 일삼는 일상적 가해자였다.
사건 당일 또한 그랬다. 시간을 돌려 4월 13일 오후 11시 40분쯤. A군이 살고 있는 강원 삼척의 한 아파트에 중학교 동창 B군과 C군(19)이 찾아왔다.
B군은 “집이 더럽다”며 냄비에 물을 받아 거실과 방에 냅다 뿌렸다. 그리고 A군에게 “물을 닦으라”고 시켰다. 매우 자연스러운 행패였다.
청소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일회용 면도기와 가위로 A군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랐다. 라이터로 A군 성기와 음모부터 귀, 눈썹을 지지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라이터 불을 딸깍일 때마다 A군은 두려움과 모멸감에 사로잡혔다. B군이 음모를 태우면 C군은 가위로 잘랐다. 이어 두 사람은 A군 머리를 강제로 밀었다.
성적 수치심을 주는 강요도 이어졌다. B군은 A군에게 “옷을 벗으라”고 지시한 후 자신의 눈앞에서 자위행위를 시켰다. A군이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온몸을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두드려 팼다.
B군은 남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면서 A군 입에 끊임없이 소주를 들이부었다. 심지어 항문에 면봉과 바둑알, 연필 등을 넣으라고 요구했다. A군이 머뭇거리자 또다시 빗자루 등으로 무자비한 난타전이 이어졌다.
C군은 B군의 끔찍한 가혹 행위를 거들면서 이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학대는 자정을 넘기고 이튿날인 14일 오전 2시 30분까지 3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A군 방에 있던 B군은 “아버지 방에서 매트리스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다. 참다못한 A군은 이 질긴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A군은 매트리스를 옮기는 대신 주방으로 가 흉기를 꺼내 들고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B군은 A군 침대에 누워 있었다. A군은 흉기로 B군 가슴을 한 차례 힘껏 찔렀고, B군은 사망했다.
B군과 C군이 평소 A군을 어떻게 대했는지 증언한 중학교 동창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캡처)
A군은 경찰에서 “B군이 오랫동안 괴롭혀 예전부터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범행 당일에는 괴롭힘이 너무 심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고 진술했다. ‘학폭’에서 시작된 가학의 굴레를 성인이 돼서도 벗어나지 못한 채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뀐 상황이었다.
1심은 A군에게 징역 장기 5년~단기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군은 자신을 괴롭히는 B군을 예전에 형사 고소했으나 이를 제지할 만한 조치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더 심한 괴롭힘을 당하자 더 이상 가족이나 학교, 경찰 등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인격 말살에 이를 정도의 폭력과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 중증 지적 장애가 있는 미성년자로 보통의 성인에 비해 판단 및 대처 능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저질렀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A군의 아버지는 “아들은 평소 일반인처럼 잘 지내는 듯하지만, 위기에 닥치면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3시간 가까이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도망가거나 외부에 도움 요청을 못 한 것”이라며 “두 병 정도의 소주까지 마셔 정신 분열이 일어난 것으로 일반인과 똑같이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A군 변호인은 “A군은 지적 장애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진단받았고, 신경정신과 처방 약을 먹던 중 범행 당일에 B군이 다량의 술까지 강제로 먹여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하게 됐다”면서 ‘살인의 고의’를 적극 부인했다.
재판부는 “A군이 중·고교 학업성적이나 학업성취도가 낮기는 했으나 글을 읽고 쓰며 수업과 동아리 활동 등 정상적으로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졸업했다. 지적 장애 정도가 변별 능력과 행위통제 능력을 결여할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판시했다.
이어 “범행 당시 정신과 처방약을 복용한 채 B군의 강요로 상당 양의 소주를 마셨지만 PC방에 갔던 일과 범행 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기억하고 있어 심신상실 내지 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B군에 대한 분노와 보복의 감정을 갖고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A군이 수사기관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중간중간 계속 B군을 흉기로 찔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한 점으로 볼 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 “A군 측이 피해회복을 위해 형사 공탁했으나 (숨진) B군 가족이 수령을 거부하고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검찰이 징역 장기 12년~단기 6년을 구형한 것에 비해 A군의 전후 사정이 참작돼 실제 선고는 형량이 낮아진 것이었다.
학교폭력 조사를 맡았던 교사와 담임교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군 휴대전화에는 가해자들이 평소 그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하대하는 대화 녹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사건 당시 A군을 괴롭히는 데 가담해 특수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군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또 다른 날’ A군 집에 불을 내는 등 현주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다른 동창생 D(19)군에게는 장기 6년 및 단기 4년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D군은 이 사건 발생 며칠 전 A군 자택에서 C군과 함께 불을 지르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이 당시 D군은 A군 집에 소화기를 마구잡이로 살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C군은 경찰 조사에서 “사망한 B군이 범행을 주도했다”며 혐의를 일부 부인했으나, 재판부는 C군이 B군과 범행을 공모하고 범죄에 본질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수폭행 혐의로 기소된 C군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 및 5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집에 불을 지르려 했던 D군에 대해서는 “D군은 피해자의 부친이 장기간 부재중인 것을 틈타 피해자 집에 방화를 시도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도 “D군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과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며 장기 5년~단기 3년을 선고했다.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캡처)
하지만 법은 C군 D군과 합의하지 않았다. 이듬해 4월 진행된 두 사람 항소심에서 이들은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C군에 대해 원심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했지만 이 사건 각 범행의 중대성, 피해자가 입었을 신체적·정신적 고통의 정도, 인격적 모멸감, 향후 피해자에게 남게 될 상처 등을 감안할 때 피고인에 대해서 그 죄책에 상응하는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원심의 징역 7년을 유지했다.
D군은 항소심 들어 그가 성인이 된 점을 고려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마지막으로 숨진 B군 가족이 A군과 합의를 거절하고 엄벌을 촉구하며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A군 아버지는 ”합의를 떠나 어쨌건 우리 아들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꼭 사과하고 싶다“며 ”또 사과받고 싶기도 한데, 그쪽에서 만나주질 않는다“고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얽히고설킨 피해자와 가해자의 굴레는 2025년 열린 A군 항소심에서 ‘범행 당시 A군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던 점’과 ‘사건 경위’를 재판부로부터 인정받아 A군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형받으며 종결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두고 ”학교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어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 모두가 적절히 개입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어린 청소년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결과가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