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무지 많았는데”…존폐 기로 남부터미널의 `쓸쓸한 명절`

사회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3일, PM 05:01

[이데일리 정유진 수습기자]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 무지하게 많았는데, 지금은…”

과거 귀향객들의 명절이 시작되던 시외버스터미널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이용객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버스 운행이 줄어들면서다. 서울남부터미널을 운영하던 운영사는 사업 면허를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상봉터미널 폐쇄에 이어 남부터미널까지 사라지게 될 경우 교통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대합실 내 상가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대합실 내 상가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사진=정유진 수습기자)
지난 21일 오전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대합실에서는 영업 중인 상가보다 문을 닫은 상가가 많았다. 셔터로 구분된 상가 구역은 20곳 남짓이었지만, 문을 연 가게는 편의점과 김밥집, 국숫집 등 5곳에 그쳤다. 빈 점포에는 ‘상가 임대·단기임대 가능’ 현수막 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점심이 되자 버스를 승객들이 조금씩 모여들었지만, 명절을 앞두고 북적이는 버스터미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터미널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최근 몇년새 변한 풍경이 어색하다고 했다. 추석을 앞두고 창원으로 향하던 김모(78) 씨는 “10년 전만 해도 사람이 무지하게 많았다”며 “(지금은) 밥 먹으려면 (터미널에 식당도 없어)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근무한 미화원 장모(69) 씨는 “옛날에는 빈 상가가 한두 군데밖에 없을 정도였다”며 “명절이라고 해도 그 때처럼 사람들이 많지가 않다”고 말했다. 8년째 장사 중인 한 상인 A(66) 씨도 “명절 때 되면 괜찮기는 한데 조금씩 줄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버스기사들은 코로나19 때 줄어든 운행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14년부터 남부터미널을 오갔다는 진천 노선 기사는 과거 승객 대기 줄이 50m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코로나가 온 뒤 버스 회사마다 차를 줄였는데 뺐던 차들이 복귀가 안 됐다”고 귀띔했다.

실제 전국적으로도 시외·고속버스 이용객과 노선 수는 코로나19 이전보다 감소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외·고속버스 이용자는 1억 1839만명으로 2019년 2억 2896만명보다 48.3% 줄었다. 같은 기간 노선 수는 3,834개에서 3,203개로 16.5%, 차량 대수는 8,819대에서 5,961대로 32.4% 감소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남부터미널 운영사는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사업 면허 반납 의사를 밝혔다. 서울시에 따르면 운영사 엔티산업은 지난 7월 말 서초구에 면허 반납 관련 공문을 보냈다. 다만 폐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공문을 이관 받은 서울시 관계자는 “면허 반납에는 시의 허가가 필요하고 대체·임시 정류장 마련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로 회신했다”며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인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이용객 감소 끝에 문을 닫은 터미널도 있다. 서울 중랑구 상봉터미널은 1985년부터 운영되다 2023년 11월 폐업했다.

남부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터미널이 사라질 경우 겪을 불편을 우려했다. 김 씨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맞는 열차편을 이용하기 어렵다. 버스는 버스대로, 기차는 기차대로 기능이 있지 않느냐”며 “나이 든 사람들은 운전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날 경남 고성의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정모(20) 씨도 남부터미널에서는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이곳을 이용하지 못하면 기차로 창원까지 간 뒤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시외버스와 터미널의 축소가 철도로 닿기 어려운 지역 주민들의 이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시외·고속버스는 철도가 닿지 않는 중소도시까지 연결하고, 터미널도 대부분 시가지 안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며 “터미널 폐쇄와 노선 감축은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에 큰 타격을 주고,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이동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통 사각지대를 막기 위한 공공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철도 이용이 어렵고 환승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공영제나 준공영제를 통해 지방과 서울의 터미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로교통학과 교수도 “재정 지원 없이 민간 운영사에 계속 문을 열라고만 할 수는 없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터미널 유지를 위해 재정을 투입할지 정책적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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