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사과 농사를 15년 지었는데, 올해는 진짜 말도 못하게 더웠잖아요. 다행히 대비를 해놨으니 아무래도 피해가 덜하지요.”
늦은 오후에도 산바람 한 줌 없이 땡볕이 쏟아지던 경남 거창군의 지효농장. 과수원 입구에 들어서자 푸릇한 청사과들이 볕을 잔뜩 받은 부분부터 발그레하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권재경 대표는 올해 여름 혹독한 폭염을 견뎌내고 알알이 굵어지는 사과나무들을 바라보며 “다행히도 풍작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경남 거창군은 덕유산, 삼봉산, 비계산 등 1000m 넘는 높은 산들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고산지대로, 청정자연의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고산지대 특성상 서늘한 기후와 아침 저녁의 일교차는 사과의 당도와 향을 끌어올리는 데 최상의 조건이지만, 올 여름은 섭씨 40도(℃)까지 치솟으며 불볕더위가 덮쳤다. 대다수 농가는 타들어가는 과육을 보며 발만 굴러야 했다.
실제로 올 여름 극심했던 폭염·가뭄으로 인한 과일류 일소(햇볕데임) 피해는 대부분 경남 지역에 집중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8월 기준 전국 주요 과일류 피해 신고 면적(사과 54.6헥타르(㏊), 배 53.8㏊, 단감 1696.7㏊) 가운데 경남 비율이 99.2%에 달했다.
하지만 권 대표의 사과밭은 사정이 달랐다. 올 봄 1500평 규모에 약 3000만원을 들여 햇빛차단망을 선제적으로 설치해둔 덕분이다. 권 대표는 경남 지역특화품목육성단지 조성 사업에 참여해 총사업비 총 5680만원 중 절반은 지방비를 지원받고, 나머지 절반을 자비로 투자했다.
섭씨 29도에 열려 있던 차단망은 기기를 작동하니 ‘차르르’ 소리를 내며 옅은 그늘을 만들면서 닫혔다. 권 대표는 “자동 설정해 둔 32도를 기준으로 온도가 오르내릴 때마다 자동으로 햇빛차단망이 열리고 닫힌다”며 “일소 피해는 물론이고 우박 피해를 막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지효농장의 햇빛차단망 모습(사진 제공=권재경 대표)
다만 농장 모서리의 사과나무들에선 햇볕에 타들어간 진갈색 사과들도 눈에 띄었다. 권 대표는 이 사과들을 따내며 “차단망이 닿지 않은 나무들은 직사광선을 피할 수 없었다. 한여름엔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일했는데, 썩어가는 사과들을 솎아낼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폭염과 가뭄 등 이상기후에 따른 과일 농사의 피해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매년 반복되는 구조적 위기로 자리 잡았다. 현장에서는 향후 기후위기 여파가 한층 강하고 빈번하게 들이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수 피해로 인한 생산량 저하가 농가의 소득 감소, 시장 가격 인상, 소비자의 장바구니 부담 증가로 도미노처럼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과수 생산 기반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2025년부터 ‘스마트과수원특화단지’ 조성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기계화와 무인화가 가능한 단순 수형으로 과수원을 재편하는 동시에 내재해성 신품종 갱신을 지원한다. 햇빛차단망·미세살수장치 등 재해예방시설 집약적으로 설치한다.
스마트과수원 구축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예산도 늘리는 중이다. 사업 첫해였던 2025년엔 13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13억원, 내년에는 129억원으로 증액 편성해 과수 농가의 기후변화 대응력 높이기에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정부는 폭염으로 인한 고온장해·병충해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6월부터 과수 주산지 농협을 통해 약제와 영양제를 최대 절반 가격으로 할인 공급해왔다”며 “다목적 햇빛차단망 같은 신기술도 지속해서 발굴·보급해 안정적인 과수 생산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햇빛차단망이 설치된 경남 거창군 지효농장에서 권재경 대표가 익어가는 사과를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김미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