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아닌 '계획'…"자퇴 청소년, 색안경 끼고 보지 마세요"[난 괜찮...

사회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6일, PM 01:51

명절을 맞아 모인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로 [난 괜찮아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자퇴한 청소년부터 취업을 미루는 청년, 결혼을 하지 않는 이들, 자녀 계획이 없거나 황혼 연애·재혼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평소 그들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면 이번 명절을 계기로 조금은 이해해보면 어떨까요? [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김태섭·정유진 수습기자] “자퇴했다고 해서 인생이 망한다거나 흠집이 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퇴는 포기가 아니라 내 삶과 꿈을 포기하지 않을 선택입니다.”

대구에 사는 정모(17) 양은 올해 자퇴를 결정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119구급대원을 꿈꿔온 정양은 보건계열 특성화고 진학을 희망했지만, 성적이 아깝다는 주변의 권유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혼자 화장실이나 빈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결국 정양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내 삶과 마음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학교를 그만뒀다.

올해 자퇴를 결정하고 검정고시 공부를 이어가는 정모(18) 양의 검정고시 대비 시험지. (사진=독자 제공)
올해 자퇴를 결정하고 검정고시 공부를 이어가는 정모(18) 양의 검정고시 대비 시험지. (사진=독자 제공)
◇학교 밖에서 이어가는 꿈...포기 아닌 ‘선택’

자퇴 후 정양은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해 최종적으로 119구급대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매일 아침 국어·수학·과학 등 검정고시 강의를 듣고 기출문제를 풀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에는 가족들과 축구 경기를 보거나 여행을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난다.

정양은 “학교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주변도 더 챙기게 됐고 사소한 일에도 잘 웃을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학교를 다닐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고 제 목표를 위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게 매우 행복하다”고 전했다.

친구들에게 “왜 자퇴했냐”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정 양은 “다른 길을 가는 것뿐이지 자퇴가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자퇴를 하면 ‘문제가 있어서 그만뒀겠지’, ‘공부를 포기했겠지’라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며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학교를 그만두면 낙오자가 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과거 학교 부적응이나 학업 포기로 여겨졌던 고교 자퇴가, 최근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스스로의 삶과 건강, 새로운 진로를 주도적으로 설계하기 위한 ‘적극적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원모(17) 양 역시 자퇴를 ‘나만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중학교 때 좋은 성적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원 양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신 1.0, 1.3등급을 기록할 만큼 학업에 열중했다. 하지만 입학 후 건강이 악화해 결석이 잦았고, 2학년 때는 주 1~2회 수액을 맞아야 할 정도로 체력적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대입 과정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 양은 학교 밖 청소년의 길을 택했다. 현재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연계된 기업 인턴십에 참여하며 신약 개발 연구원의 꿈을 키우고 있다. 원양은 “주어진 시스템 속에서 정해진 방향만 따르는 게 아니라, 내게 필요한 배움을 스스로 선택하고 방향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고교 자퇴생 2만6천여 명…재학생 중심 입시제도 개선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0년 1만 4100여 명에 불과했던 자퇴생은 2024년 2만 6700여 명으로 약 두 배가량 늘었다.

이에 따라 자퇴 후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수능을 응시하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수능에 ‘검정고시 등’으로 접수한 학생은 2023학년도부터 꾸준한 증가해 올해 수능에는 2만 2700여 명에 달한다. 해당 접수 항목에는 검정고시 합격자, 해외 학력자 등이 포함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증가와 함께 이들의 진학과 성장을 뒷받침할 입시 제도 및 지원책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대입 체계가 고등학교 재학생 중심 체제로 짜여 있어 자퇴생에게 불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권일남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주요 상위권 대학들은 검정고시 성적에 대한 인정이 취약하고 내신 산정 등에서도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다소 불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시 전형의 본래 취지는 단순한 시험 위주 평가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과 잠재력을 살피는 데 있다”며 “학교 밖 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스스로 비교과 활동을 채워나간 노력 역시 평가에 반영된다면 수시 제도의 취지를 한층 더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지=생성형 AI 제작)
(이미지=생성형 AI 제작)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