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에 페미니즘 활동 단체 페미당당이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며 모형 미프진(낙태약) 자판기를 설치해 약물적 임신중단법을 소개하고 있다. 2017.11.19 © 뉴스1 민경석 기자
약 2년 1개월 전 후배들과 함께 '1㎝ 약 삼킨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탐사 기획 보도를 했다. '1㎝ 약'은 인공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을 의미한다. 이 기획은 미프진 합법화와 함께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임신 중지는 비범죄 됐다. 그러나 합법임을 명시하는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임신 중지를 합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 여성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눈을 돌려 미프진을 불법 거래했다.
정부는 지난 16일 미프진을 공식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후배들과 함께한 기획 보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자평한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보도 당시 내가 아이가 있었다면'을 전제로 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짧은 글은 후속 보도 성격으로 쓴다.
아내가 아이를 출산한 것은 지난해 11월 3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초음파를 통해 태아를 확인했다. 검은색 화면에 구름처럼 형상을 그리는 한 '존재'를 보았다. 두근두근, 심장박동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 '확실한 존재'는 안개에 갇힌 것처럼 어딘가 모호하고 위태롭게 느껴졌다. 필자는 새 생명을 인지했을 뿐 체감하지 못했다. 회사 업무처럼 간병 등 출산 후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약 10개월 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얀색 속싸개에 싸여 있던 아이는 후광에 에워싸인 것처럼 눈부시게 환했다. 안개를 걷어내고 구름 위로 떠오른 천사의 형상이었다. 눈앞의 풍경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곁에 있던 의사가 아이의 출생 연도를 확인해 주다가 한마디 했다. "왜 그렇게 우세요. 이렇게 좋은 날에." 아이의 탄생도, 필자의 눈물도 논리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라는 정서로 수렴될 뿐이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아이는 깨어 있으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아이는 겨우 잠들었지만, 다시 깨서 울었다. 새벽에도 서너 번씩 깨고 울었다. 일어선 채 안아주면 마침내 눈물을 그쳤다. 그러다 잠깐이라도 앉으면 다시 울었다.
아이는 태초의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감각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곤두세워, 자신을 둘러싼 보호막에 빈틈이 생기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부모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지,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는지 귀신같이 알아챘다. 아이는 울음으로써 말을 걸었고, 자신을 지켜달라고 요구했고, 왜 그것밖에 하지 못하냐고 항의했다.
우리 부부만으로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처가·시가 식구들이 동원됐다. 결국 장모님이 우리 부부의 집에 상주했다. 아이는 웃기 시작했고 몸을 뒤집었고 온전히 앉게 됐다. 이제는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두 다리만으로 서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아득하고 막막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육체 노동이자 감정 노동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질 복지가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에서는 0세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에게 월 100만 원, 1세 아동 양육 부모에게는 50만 원의 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나 최고치 수준의 육체·감정 노동 결합이자,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육아를 보상 지원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베이비시터의 월급이 한 달 300만~400만 원 수준이다. 상주 베이비시터의 월급은 최소 500만 원이라고 한다.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인 373만 원(2024년 기준)을 웃돈다. 이것이 노동으로서 양육의 가치를 과장 없이 입증한다.
수 백만 원의 육아 비용을 줄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부부 중 한 명이 경력 단절을 감수하고 직장을 그만둔 뒤 육아에 전념하면 된다. 두 사람 모두 일한다면, 한 사람의 월급은 고스란히 육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필자처럼 처가 또는 시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가족으로부터 도움받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어떨까. '임신'을 준비하라고 선뜻 조언하기 어렵다.
자녀가 18세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통상 3억 5000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고서야 왜 사람들이 부동산이나 주식에 열을 올리는지 실감했다. 노동 외에 수입이 있어야 아이를 온전히 키울 수 있다. 예쁜 옷을 사주고 맛난 음식을 사주고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후회 없이 일했다고 자부했지만, 열심히 투자하지 않는 것이 후회됐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아내와 부동산 얘기를 나누다가 다퉜다.
미프진을 선택한 여성 대부분은 양육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다. 그 여성이 매달 300만~400만 원의 노동 가치에 달하는 양육을 버틸 수 있을까. 아이가 혼자 일어나 세상으로 나아가기까지 드는 비용인 '3억 5000만 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결국 돈이 문제다. 돈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미프진을 삼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미프진의 도입에는 당위성과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 가지 생각은 떨쳐지지 않는다. 미프진의 공식 도입이 생명의 의미를 퇴색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 미프진 도입과 함께 돌봄 서비스 지원을 적극 확대했으면 좋겠다. '수백만원대 양육'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천사를 보는 기적이 자꾸 생겨야 살 만한 사회가 되므로.
mrlee@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