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법무법인 세종 제공)
우리는 보통 권리 구제 수단으로 소송을 떠올리곤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수년 또는 수십 년의 법정 다툼 끝에 승리를 한 뒤 그동안 함께 한 동지들과 함께 법원 정문 앞에서 승소 소감을 말하는 건 오래된 '서초동 클리셰'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모습을 깨고 바로 규칙을 바꾸는 시도를 해, 1개월 만에 권리 구제에 성공한 공익 변호사가 있다. 바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 출생한 자녀의 이름 글자 수 제한 폐지를 이끈 법무법인 세종-공익법인 나눔과 이음, 공익법률지원센터 소속 김광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다. <뉴스1>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이름 5자 제한' 외국인 엄마-한국인 아빠 아이만 차별하는 예규
한국 국적 남성과 포르투갈 국적 여성 사이 태어난 '크리스티아누 파레스 김'. 포르투갈에선 당연히 그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러지 못 했다. '김 크리스티아누'로 출생신고를 했지만 반려됐다.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 사이 출생자는 이름자 5자를 넘길 수 없다는 대법원 예규 때문이었다.
"외국인 부와 한국인 모 사이 출생자는 이름자 5자를 넘길 수 있었지만 그 외 경우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여권발급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김 크리스티아'로 출생신고를 하고, 저희 법무법인 세종-나눔과 이음 공익법률지원센터에 법률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재판을 통한 '우회로'보다 대법원 예규 개정이라는 '지름길'을 택했다. 수많은 소송 경험을 통해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관여한 낙태죄 사건은 2010년 위헌소원이 시작됐는데 2019년에 헌법불합치결정까지 9년이 걸렸다"며 "선거운동 기간 중 인터넷실명제 사건은 2008년 헌법소원이 제기됐는데, 2021년에 비로소 위헌결정을 받았으니 무려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대법원 예규를 다투려면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아이는 온전한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대법원 예규가 위헌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김 변호사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5월 언론 기고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후 뒤 2주 뒤 대법원에 예규 개정안을 제출했다.
예규 개정안을 제출한 뒤 한 달이 지난 6월 24일, 대법원은 외국인 모-한국인 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의 이름이 5글자를 넘더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예규를 개정했다.
김 변호사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했는데, 기나긴 소송보다는 대법원의 자발적 개정을 이끌어내는 이번 전략이 다행히도 그대로 적중했다"며 " 즉각적으로 이에 응한 대법원 담당자들의 공도 상당히 크므로, 그분들께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김광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끝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법무법인 세종 제공)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지만…사회 곳곳 남은 단일민족 전제로 한 규정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만큼, 이름 글자 수 제한 같이 법령·제도 곳곳에 남아있는 단일민족 사회를 전제로 한 규정들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가 됐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외국인의 정치적 권리의 보장 문제입니다."
특히 외국인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과 선거운동 이외에도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2항 및 제3항 등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변호사는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인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을 할 수 있고, 나머지 외국인들은 선거운동 자체가 안 된다"며 "선거권은 안 주더라도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 선거철에 선거운동 보조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거 자체를 못 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출입국관리법에서 아예 모든 정치활동을 못 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문화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 중 소수자 집단인 외국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광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가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법무법인 세종 제공)
34년간 유해화학물질 노출된 소방관, 파킨슨병 걸렸지만 국가가 외면
김 변호사는 최근 집중하고 있는 사건은 바로 파킨슨병에 걸린 전직 소방관의 행정심판 사건이다. 34년간 화재진압과 화재조사 업무를 하며 지속해서 일산화탄소, 망간, 벤젠 등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이 소방관은 퇴직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 보상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보훈지청으로부터 거부당했다. 파킨슨병과 소방관 업무하고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파킨슨병의 원인은 의학계도 모른다. 인과관계 입증이 누구도 불가능하다"며 "그런데 소방관에게 입증하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사건을 맡은 '나눔과 이음' 변호사들은 해외 사례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소방관이 일반인에 비해 파킨슨병 유병률이 약 7.5~10배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소방관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때는 의외로 화재를 진압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화재 진압 후 진행하는 화재조사 때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김 변호사는 "화재 조사 때도 잔불도 남아있고 유해가스도 남아있는데 조사를 할 때는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해서 마스크를 벗는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기 때문"이라며 "흔한 질병이 아닌 파킨슨병의 유병률이 소방관들이 높다는 건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소방관들의 희생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소방관들은 일상에서 현장에 직접 뛰어듭니다. 그런데 보훈 측면에서 군인이나 경찰에 비해 인색합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소방관들을 보호를 못 해주면 국가가 책무를 다 하지 않는 것입니다."
ho86@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