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 오랫동안 대학병원에서 일하고 의학교육을 경험한 필자에게 실습의 중요성은 익숙한 문제다. 의학은 책과 강의만으로 배울 수 없다. 의과대학생과 전공의는 실제 환자를 진료하고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숙련된 교수와 선배 의사의 판단과 술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면서 진정한 의사로 성장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임상 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배경에도 이러한 철저한 임상실습과 현장 수련이 있다.
고등직업교육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이차전지와 같은 첨단 제조업의 기술인재를 강의실 교육만으로 양성하기는 어렵다. 학생이 졸업 후 현장에서 실제 사용하게 될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대학에서 직접 다뤄보고 산업현장의 전문가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어야 지식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역량’으로 바뀐다. 의사에게 임상실습이 필요하듯 기술인재에게는 산업현장 수준의 실습 교육이 필요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산업현장의 기술 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장비는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기업이 사용하는 최신 장비를 대학에 구축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며 한 번 설치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유지·보수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소모품, 안전관리, 새로운 장비로의 교체까지 지속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고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전문대학이 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낡은 장비로 학생들을 교육할 수도 없다. 대학에서 배운 장비와 취업한 기업에서 사용하는 장비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면 학생은 입사 후 추가적인 교육을 받아야 하고 기업 역시 상당한 재교육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대학의 실습환경에 대한 투자는 특정 대학만을 위한 지원이 아니다. 기업의 인재 양성 비용을 줄이고 청년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며 궁극적으로 국가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다. 반도체 분야 산업기술 인력만 놓고 봐도 2024년 말 기준 총 11만 8721명의 인력 중 전문대 졸업자 비율이 17.2%(2만 381명)를 차지한다.
최근 논의되는 미래대응기금과 교육재정 개편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초·중등교육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고등·평생교육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하고 특히 산업현장의 인재 양성과 재직자 재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에 안정적 재원을 배분해야 한다. 첨단 실습 장비의 도입뿐 아니라 유지·보수와 교체, 현장 전문가의 교육 참여, 기업과 대학의 공동 교육과정 운영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야 한다.
울산과학대도 울산시의 지원을 받아 화학·바이오 공정 훈련센터를 구축하고 학생뿐 아니라 지역 기업 재직자의 실무교육에 활용하고 있다. 또 HD현대이엔티, SK AX 등의 기업과 협력하고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도 대학의 시설과 교육역량을 개방하는 산학 융합 캠퍼스를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 제조공정과 AI를 결합한 교육, 재직자의 기술 전환 교육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전문대학의 실습실을 단순한 ‘학교 시설’이 아니라 지역산업이 함께 사용하는 인재 양성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 기업이 사용하는 장비의 사용법을 학생이 대학에서 익히고 기업의 전문가가 교육에 참여하며 재직자도 대학으로 돌아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개별 대학의 재정만으로 감당하게 해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전문대학이 살아야 기업이 산다. 첨단산업 시대에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만큼 그 기술을 이해하고 현장에서 구현하는 숙련된 기술인재가 중요하다. 역량 있는 기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산업 현장형 실습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전문대학의 실습 교육에 대한 국가와 지방정부의 지원은 교육비 지출이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