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해송 병풍 찢기고 속살 드러낸 산비탈…동해 솔숲 삼긴 '1㎜ 저승사자'

사회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30일, AM 05:17

[대전·포항·경주·안동(경북)=이데일리 홍석천·박진환 기자]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경북 경주 감포에서 포항시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가다보면 오른쪽 차창 너머로는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지만 왼쪽 산자락은 잎이 붉게 변한 소나무와 앙상한 줄기만 남은 고사목만 남았다. 포항시 흥환해수욕장과 호미곶 방향으로 이동할수록 피해 흔적은 더욱 뚜렷했다. 해안선을 따라 병풍처럼 늘어섰던 해송 군락지는 잘려나간 나무들의 빈자리만 보였다. 벌목을 마친 산비탈은 속살을 드러냈고 아직 제거하지 못한 고사목은 푸른 나무들 사이에서 붉거나 회색빛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구룡포와 장기를 지나 북쪽 기계면으로 방향을 돌려도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도로 주변에서도 고사목 제거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뒤편 산등성이에는 또 다른 고사목이 줄지어 나타났다. 베어내는 속도보다 병이 번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현장의 우려를 실감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단풍도 아니고…" 경북 경주시 충효동에 위치한 사적 제21호 김유신장군묘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이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되면서 단풍에 물든 것처럼 얼룩지고 있다.(사진=홍석천 기자)
경북 일대의 소나무숲이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무너지고 있다. 특히 포항·경주·안동은 피해고사목이 5만그루가 넘는 ‘극심’ 지역이다. 동해안에서 시작된 붉은 고사목의 띠는 내륙까지 깊숙이 파고들며 자연 경관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송이산지까지 위협하고 있다.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이 고사목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감염목을 베어 파쇄하거나 훈증해야 하지만 피해 면적이 급속하게 늘면서 방제가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경주 감포에서 포항 호미곶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면 소나무재선충으로 고사되고 있는 나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사진=홍석천 기자)
경주 감포에서 포항 호미곶으로 올라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면 소나무재선충으로 고사되고 있는 나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사진=홍석천 기자)
◇전국 피해 절반이 경북…문화유산 품은 경주·안동도 ‘초비상’

29일 산림청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은 재선충을 보유한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이 이동하면서 옮긴다. 나무 조직 내로 들어가 곰팡이 등을 먹이로 삼으며 줄기·가지·뿌리 속을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 동래구 금정산의 소나무에서 처음 소나무재선충병이 보고된 후 2007년 137만그루의 1차 대발생과 2014년 218만그루의 2차 대발생을 경험했다. 이후 대대적인 방제로 피해가 감소했지만 2022년부터 다시 증가한 결과, 현재 3차 대발생 단계로 진입했다.

과거와 비교해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피해지역이 훨씬 넓어졌다는 점이다. 28일 기준 전국 소나무재선충병 감염우려목과 기타 고사목을 포함한 총방제 대상은 462만 2687그루에 달한다. 발생 지역도 지난해 154개 시·군·구에서 올해 166곳으로 확대됐다.

이 중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경북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고사목은 186만 5000여그루다. 전국 재선충병 피해의 45%가 경북에 집중됐다.

2021년과 2022년 각각 11만그루 수준이던 피해고사목은 2023년 47만그루로 급증했다. 2025년에는 76만그루까지 불어났다. 경북도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137만그루를 방제했다. 같은 기간 전국 방제량(261만그루)의 절반이 넘는 수준이지만 피해 확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은 포항이다. 포항시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기본설계를 통해 지역 소나무의 31.3%가 완전히 고사했다. 피해지역도 호미곶·동해·구룡포·장기 등 남부 해안권에서 기계·신광·청하·송라·죽장으로 북부지역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재선충병의 북상은 포항의 대표적인 송이산지를 위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덕을 거쳐 울진 금강송 군락, 봉화 송이버섯 군락지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인근 경주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천년고도로 각종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지역의 특성상 소나무재선충병은 각종 문화재 보존이라는 과제도 던져주고 있다. 김유신장군릉이나 인근의 탈해왕릉 등 문화유산 주변의 산림들은 마치 단풍이 든 모습처럼 붉게 변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그래픽= 김일환 기자)
◇“살릴 수 있는 숲부터 막아야”…수백억 투입

경주시는 지난해 300여억원을 들여 대대적인 방제를 벌였다. 세계문화유산이 밀집한 남산 일원에서도 4만 2000여그루를 제거하는 사업이 추진했다. 포항시는 올해 106억원을 투입해 고사목 5만그루를 제거하고 예방나무주사와 항공방제, 수종전환을 병행하고 있다. 피해가 심한 380㏊에서는 소나무를 제거한 뒤 편백과 굴참나무, 산벚나무 등 재선충병에 감염되지 않는 나무를 심어 새로운 숲을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포항, 경주와 함께 전국적인 피해 극심 지역인 안동도 하회마을과 청량산 주변 121㏊에서 드론을 활용해 매개충 방제를 진행하고 있다. 피해가 심한 산림에는 소나무 대신 다른 수종을 심는 수종전환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방제사업장이 넓게 흩어져 있고 고사목이 계속 발생하면서 작업 인력과 예산, 현장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주시 관계자는 “단순히 감염목을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유산 주변의 경관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도 새로운 과제”라고 말했다. 안동시 관계자도 “하회마을과 청량산은 역사·문화적 가치뿐 아니라 소나무가 만드는 전통 경관의 가치가 큰 만큼 고사목 제거 이후의 산림 복원까지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언급했다.

소나무재선충병의 확산에 대해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등은 이상기온에 따른 매개충 활동 증가 및 소나무류 자연 쇠퇴, 소나무 무단 반출 등을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 피해목을 무단 반출하는 사례가 끊이질 않았고, 국유림을 제외한 사유림과 공유림 등 민간과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지역에서의 재선충 방제 실패도 중요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지자체의 병해충 담당 인력은 평균 0.87명에 불과하다. 올해 기준 기관별 방제율을 보면 산림청이 99.9%에 달한 반면 전국 각 지자체의 평균 방제율은 61.9%애 불과했다. 여기에 정부 예산이 피해가 확산하면 늘고 감소하면 주는 고무줄 예산처럼 운영되면서 선제적 방역 실패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남성현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석좌교수(전 산림청장)는 “죽은 나무만 베어내는 사후약방문식 땜질 처방이 아닌 과감하게 사전 솎아베기(간벌)로 숲의 생태적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며 “여러 이유들로 중단된 항공방제도 재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당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선충 피해가 조금만 줄어도 예산을 줄여 재확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재선충 방제는 지속적이고 과감한 예산 집행과 인력 투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취재진이 방문한 포항 호미반도의 산자락에는 푸른 소나무와 붉게 죽어가는 나무, 벌목 후 텅 빈 산비탈이 한 화면처럼 겹쳐 있었다. 경북의 산림에 필요한 것은 몇 그루를 베어냈는 지를 보여주는 방제 실적이 아니라 어떤 숲을 먼저 지키고, 어디에서 확산선을 끊은 후 무너진 숲을 어떤 모습으로 되살릴 것인지 결정하는 거시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경주보문단지 인근의 사적지 입구 모습. 경주시는 문화재 훼손 방지를 1순위로 소나무재선충의 확산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홍석천 기자)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경주보문단지 인근의 사적지 입구 모습. 경주시는 문화재 훼손 방지를 1순위로 소나무재선충의 확산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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