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석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석유화학제품 담합 사건 수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검찰에 따르면 담합에 가담한 7개사는 2021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에 공급하는 석유화학 제품 8개 품목의 가격 변동 폭과 시기 등을 합의한 혐의를 받는다. 담합 대상 제품은 폴리염화비닐(PVC), 가소제, 가성소다, 염산, 하이포 등이다. 검찰이 추산한 담합 규모는 16조 3961억원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담합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가 수사 및 기소한 사건 가운데 전분당 담합 규모(10조 1520억원)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검찰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담합 행위를 포함하면 담합 규모가 20조~30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담합 대상 제품은 건설·반도체·전기전자·수처리 등 여러 산업에 쓰이는 기초소재다. PVC는 파이프와 창틀, 전선피복 등에 사용되며 가소제는 PVC의 유연성을 높이는 첨가제다. 에피클로로히드린(ECH)는 반도체 패키징 소재와 인쇄회로기판 등에 쓰이는 에폭시 수지의 원료다. 이에 검찰은 원재료 가격 상승이 관련 기업의 제조원가를 높이고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돼 일반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들이 제품 공급가격의 변동 폭과 시기를 합의하거나 대형 거래처의 구매 입찰에서 투찰 가격을 미리 조율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거래처 입찰에서는 각사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며 합의 가격 수준을 반영하기 위해 낙찰업체와 투찰 가격까지 짜맞춘 것으로 조사됐다. 입찰 과정에서는 이른바 ‘들러리’로 참여할 업체를 선정한 뒤, 들러리 업체를 ‘초빙’한다는 식으로 소통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나희석)가 밝힌 담합 사건 참여 회사와 담합 품목.(사진=서울중앙지검 제공)
담합은 주로 업체별 팀장급 모임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관계자들이 품목별 가격 조정 시기와 폭을 정한 뒤 각 업체가 거래처를 상대로 합의 내용을 관철하는 방식이다. 검찰은 이들이 담합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가격 인상 공문을 보내는 순서까지 사전에 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기소된 업체들이 각 회사별 보고 체계에 따라 담당자가 바뀌면 후임자를 경쟁업체에 소개하는 방식으로 담합을 지속하는 한편, 일부 업체는 경쟁업체 관계자들과의 회합을 전담하는 연락책 직원을 별도로 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녹취록에서 석유화학업체 임원들은 “PVC는 형하고 나하고 마음먹었으니까 그렇게 한다”, “다른 곁가지들은 신경쓰지마”,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가는 거야. 형 사랑해요” 등의 대화를 나누며 담합을 공고히 했다.
검찰은 이들이 미국·이란 전쟁 이후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담합을 계속하며 손익 개선 기회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업체들은 산업통상부가 지난 4~6월 일부 석유화학사에 원재료 구입 지원비 명목으로 국고 약 1465억 원을 지원했음에도 담합을 지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 부장검사는 브리핑에서 “담합을 통한 가격 상승은 관련 산업의 제조 원가 상승으로 직결됐고 그 피해는 최종 소비자인 기업과 국민에게 귀결됐다”면서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위반죄 법정형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국제 기준보다 매우 낮은 수준으로, 법정형을 상향하는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나 부장검사는 오는 2일 검찰청 폐지 및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출범 국면과 관련 “검찰청 시대의 마지막 브리핑”이라며 “형사사법 제도 개편 과정에서 담합 등 범죄로 인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중수청 등 수사기관과 긴밀히 협력할 방침”이라고 부연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서울중앙지방공소청 중대범죄기소 4부로 변경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