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마흔다섯 살 남성이 숨이 몹시 차다며 찾아왔다. 얼굴이 유난히 하얬다. 단순히 피곤해 보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심한 빈혈의 가능성이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환자는 이틀 전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했다. 심장혈관을 살펴보는 관상동맥CT 검사를 권유받았지만 예약은 한 달 뒤에 잡혀 있었다. 숨이 차서 병원을 찾았는데, 그 이유를 확인하려면 다시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래 눈꺼풀을 살짝 내려 안쪽을 살폈다. 붉은빛이 돌아야 할 결막도 창백했다. 물론 얼굴빛과 결막의 색만으로 빈혈을 확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우선 혈액검사를 하고 다음 날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검사에서 나온 혈색소 수치는 5g/dL였다. 성인 남성의 일반적인 정상 범위가 약 14∼17g/dL인 점을 생각하면 매우 낮았다.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소화기내과에 연락해 입원 치료로 연결했다.
환자가 그렇게 숨이 찼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빈혈이라고 하면 흔히 어지럼증을 떠올린다. 그러나 심한 빈혈은 숨참과 피로, 두근거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폐에서 받아들인 산소가 온몸에 도착하려면 혈액 속 적혈구가 이를 운반해야 한다. 그 안에서 산소를 붙잡고 옮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 혈색소다.
심장이 혈액을 보내는 펌프라면 혈색소는 산소를 실어 나르는 운반 수단이다. 펌프가 잘 움직여도 산소를 실을 자리가 크게 줄어들면 몸 곳곳에 필요한 만큼 전달할 수 없다. 몸은 부족한 산소 공급을 만회하려고 심장을 더 빨리 뛰게 한다. 그래서 빈혈이 심한 사람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다.
그렇다면 빈혈을 교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다음 질문이 남아 있었다.
왜 마흔다섯 살 남성의 혈색소가 이 정도까지 떨어졌을까. 소화기내과에서 원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장에 큰 용종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 다행히 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장 용종은 장 안쪽 점막이 돌출되어 자란 것으로 대부분 증상이 없지만 출혈을 일으켜 빈혈로 이어지기도 한다. 빈혈은 치료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몸 안의 다른 이상을 찾아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수치만 올리고 끝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환자는 빈혈을 교정한 뒤 더 이상 숨이 차지 않았다. 지금은 6개월째 소화기내과와 함께 경과를 보고 있다. 혈압이 다소 높아 심장내과 진료도 이어가지만, 처음 진료실을 찾게 했던 심한 호흡곤란은 사라졌다.
이 환자를 떠올리면 검사의 종류보다 진료의 순서를 생각하게 된다. 관상동맥CT는 필요한 환자에게 유용한 검사다. 다만 어떤 검사가 필요한지,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는 환자를 살피는 과정에서 결정된다. 언제부터 숨이 찼는지, 움직일 때만 그런지, 가슴이 아픈지, 출혈을 의심할 만한 변화는 없었는지 묻는 일. 얼굴과 결막을 살피고, 맥박을 짚고, 청진기로 심장과 폐의 소리를 듣는 일. 이 과정에서 검사의 방향과 시급성이 정해진다.
앞선 진료의 모든 상황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환자의 창백함은 특별한 장비가 있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소견은 아니었다. 환자의 얼굴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눈꺼풀 안쪽을 확인했다면 영상검사를 기다리기에 앞서 혈액검사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청진기 하나로 모든 병을 찾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교한 영상검사가 문진과 진찰의 자리를 대신할 수도 없다. 각각 알려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심장혈관 사진은 혈관을 보여주지만 환자가 언제부터 어떻게 힘들어졌는지는 직접 묻고 살펴야 알 수 있다.
또 다른 환자는 일흔세 살 남성이었다. 숨이 차고 몸이 심하게 부어 병원을 찾았다. 호흡곤란에 부종까지 동반되어 있었고, 검사에서는 심장 기능도 다소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심장 기능이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찾아야 했다. 처음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을 때 환자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 번의 문진으로 모든 병력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환자에게는 오래 전의 일일 수도 있고, 지금의 증상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으면 다시 묻게 된다.
이 환자에게도 과거에 앓았던 병과 수술, 복용했던 약을 여러 차례 되짚어 물었다. 그 과정에서 갑상선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은 채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숨참과 부종, 심장 기능 저하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목에서 받은 수술이 지금의 숨참과 이어질 것이라고 환자가 먼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의사는 그 연결을 찾아야 한다. 병력을 듣는 일은 질문 목록을 한 번 확인하고 끝내는 과정이 아니다. 처음에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가 다시 묻고 듣는 사이에 드러나기도 한다.
갑상선은 목 앞쪽에 있는 작은 기관이다. 크기는 작지만 이곳에서 만드는 호르몬의 영향은 온몸에 미친다. 몸이 에너지를 사용하고 체온을 유지하며 여러 장기가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다. 심장 역시 그 영향을 받는다. 갑상선을 모두 제거한 뒤에는 몸이 만들지 못하는 호르몬을 약으로 계속 보충해야 한다.
혈액검사에서 갑상선자극호르몬인 TSH는 매우 높았고, 갑상선호르몬의 하나인 유리 티록신, 즉 free T4는 매우 낮았다. 두 수치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TSH는 뇌하수체가 갑상선에 보내는 요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니 더 만들라는 신호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는 아무리 강한 신호를 보내도 호르몬을 만들어낼 갑상선이 없었다. 높은 TSH와 낮은 free T4가 그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상선호르몬이 심하게 부족하면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는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몸에 체액이 쌓여 붓기도 하며, 심한 경우에는 심부전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환자를 단순히 심장과 관계없는 호흡곤란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다. 문제의 시작은 심장 밖이었지만, 그 영향은 이미 심장에 도달해 있었다. 부종을 줄이는 치료와 함께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해야 했다.
갑상선호르몬제를 다시 복용하도록 하고, 이뇨제로 과도하게 쌓인 수분을 조절했다. 치료를 이어가면서 부종과 호흡곤란이 점차 좋아졌다. 다행히 현재는 심장 기능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이 환자를 보며 약을 설명하는 일의 중요성도 다시 생각했다. 의사에게 당연한 사실이 환자에게도 당연한 것은 아니다. 갑상선을 제거한 뒤 왜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지, 몸이 좋아져도 왜 중단하면 안 되는지 충분히 전달되어야 한다. 이 환자에게 갑상선호르몬제는 불편할 때만 먹는 약이 아니었다. 몸이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호르몬을 대신해 주는 치료였다. 약을 먹고 증상이 좋아졌다는 것은 약이 필요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호르몬이 다시 공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처방전을 건네는 것과 환자가 치료를 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때때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줄이는 일도 진료에 포함되어야 한다.
두 환자는 모두 숨이 차서 병원을 찾았다. 한 사람에게는 산소를 운반할 혈색소가 부족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심장을 포함한 온몸의 기능을 유지할 호르몬이 부족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은 비슷했지만 치료의 출발점은 달랐다.
호흡곤란은 병명이 아니라 증상이다. 심장질환뿐 아니라 폐질환, 빈혈, 갑상선질환 등 여러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 사람에게 여러 문제가 함께 있을 수도 있다. 이미 심부전을 앓고 있는 환자 역시 숨이 더 찰 때마다 심장만 나빠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병을 살피면서 새로운 원인이 생기지 않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진료실에서는 환자가 전하는 이야기가 중요한 진단의 단서가 된다. 언제부터 무엇이 달라졌는지, 오래 전에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지금 먹는 약과 중단한 약은 무엇인지. 지금의 증상과 관계없어 보이는 일도 이야기하면 도움이 된다. 약 이름을 기억하기 어렵다면 처방전이나 약 봉투를 가져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환자는 자신이 겪은 변화를 알고, 의사는 그 변화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핀다. 서로의 이야기가 만나야 진단도 더 정확해질 수 있다. 검사 예약이 잡혀 있다고 해서 그날까지 증상을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숨참이 빠르게 심해지거나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흉통이나 실신이 동반된다면 예약일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늘 시간이 부족하다. 한 사람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나면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이 마음에 걸리고, 시간을 서두르자니 아직 다 듣지 못한 불편함이 마음에 남는다. 나 역시 매일 그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래도 진료를 마치기 전에는 꼭 한 번 더 묻는다.
“더 궁금한 것은 없으세요?”
환자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능한 한 끝까지 들어보려 한다. 의사가 확인하려던 검사 결과와 환자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가 꼭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의학적으로 중요한 증상부터 순서대로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진료가 끝나갈 무렵에야 꺼내는 한마디가 있고, 몇 차례 다시 물어야 떠오르는 병력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들을 틈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음만큼 충분한 시간을 쓰기는 어렵다. 낮은 진료수가 속에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우리나라 의료환경에서는 충분히 묻고 듣는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진료수가가 그 시간과 노력을 더 충실히 뒷받침해 환자 한 사람에게 더 긴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의사는 조금 덜 서두르고, 환자도 뒤에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해 말을 줄이지 않아도 되는 진료실이면 좋겠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검사를 처방하기 전의 대기 시간이 아니다. 무엇을 의심하고 어떻게 치료할지 판단하는 진료 그 자체다. 그 시간을 지키는 일이 의사 개인의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도록, 의료제도 역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해 주었으면 한다.
이번 두 환자에게도 답을 찾는 단서는 가까이에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창백한 얼굴과 눈꺼풀 안쪽에, 다른 한 사람에게는 여러 차례 되짚어 들은 수술과 약의 이야기에 있었다. 그 단서를 검사로 확인하고 원인을 치료하자 환자들은 다시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몸 안을 들여다보는 기술은 앞으로도 더 정교해질 것이다. 그 발전과 함께 환자의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시간도 넓어졌으면 한다.
심장을 보는 의사이지만 진료실에 들어오는 것은 심장 하나가 아니라 저마다의 삶과 병력을 가진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들을 수 있도록 제도와 진료환경이 함께 뒷받침된다면, 환자는 충분히 이해 받고 의사는 더 세심하게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환자와 의사 모두가 바라는 진료실의 모습도 그런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