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에 당시 수사 검사 반박…“문세광 단독범행”

사회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05일, AM 10:48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김영수(84) 변호사가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배후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당시 현장검증과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됐다며, 사건 배후에 공권력이 있었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진호 감독과 배우 이민호, 박해일, 유해진(왼쪽부터)이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제작보고회에 참석하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지난 추석에 개봉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허진호 감독과 배우 이민호, 박해일, 유해진(왼쪽부터)이 지난달 10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암살자들' 제작보고회에 참석하고 있다. 영화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로 지난 추석에 개봉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지난 3일 “이미 현장검증을 통해 사실관계가 다 밝혀진 사안”이라며 “문세광의 단독범행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육 여사 저격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에 대해서는 “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변호사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 여사가 피격된 당일,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로 특별수사본부에 파견됐다. 당시 수사본부에 투입된 검사 3명 가운데 막내였으며, 문세광을 직접 조사하고 사형 구형과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 참여했다.

그는 문세광이 북한 만경봉호에 탑승해 공작원으로부터 사상교육과 지령을 받은 뒤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하려 했다는 당시 수사 결론을 재차 강조했다. 공범이 범행에 개입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세광의 단독 실행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변호사는 2005년 사건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된 뒤 음모론이 제기됐을 때도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기소한 내용 외에 추가로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언급을 삼갔다고 설명했다.

그가 이번에 입장을 밝힌 계기는 지난달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이었다. 사건에 관한 음모론이 사실처럼 퍼지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영화까지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북한의 주장을 본뜬 듯한 이야기가 확산하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영화는 육 여사 저격의 배후에 박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공권력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검찰도 중앙정보부와 함께 사건 은폐와 조작에 관여한 것처럼 그려졌다는 지적이다.

다만 김 변호사는 영화를 직접 관람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를 보지 않아 어떻게 사건을 왜곡했는지는 알지 못한다”면서도 흥행을 위한 창작에도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데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당시 수사에 대해서는 수사당국이 매일 브리핑을 진행했고, 재판 과정까지 언론에서 수사상 허점이나 의혹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뒤늦게 당시 수사 결과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등장한 데 놀랐다고 말했다.

직접 조사한 문세광에 대해서는 자신의 행동에 강한 확신을 가진 인물로 기억했다. 김 변호사는 “확신범이어서 사실을 숨기지 않아 수사도 어렵지 않았다”며,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사상적 주장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순수한 면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문세광은 호송차 창문 너머로 모인 인파를 보고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지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분노가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절망했으며, 사형 집행 직전에는 “내가 속았다”며 오열했다고 김 변호사는 전했다.

김 변호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암살자도 아닌 문세광이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었던 데에는 심각한 경호상 허점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어처구니없는 경호 실패”라고 표현했다.

출입증이 없는 사람의 입장을 막아야 했지만, 문세광이 일본어로 말하자 경호 인력과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행사장 진입을 허용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당시 허술한 경호의 책임을 물어 서울 중부경찰서 정보과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경호 실패가 의도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현장의 대응 부실은 있었지만, 이를 계획적인 범행 방조나 배후 개입의 근거로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육 여사가 경호원의 총탄에 맞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객석에 있던 고 장봉화 양이 경호원의 오발로 숨진 사건이 육 여사 피격 경위와 뒤섞여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사건 초기 장 양도 문세광의 총탄에 맞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일주일 뒤 현장검증을 통해 경호원의 오발에 피격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영화에 대한 비판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존 인물을 다루는 창작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할 수 없는 가상의 인물과 달리, 유족이 있는 실존 인물을 왜곡하는 문제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문예 창작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변호사는 노태우 정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 1차장과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화체육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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