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사람들연구소 이사장)
이런저런 사회 제 현상에 대해 원인과 대안을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의 종착점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길로 유도되고 도달된다. 결국 '사람의 교육' 얘기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교육의 힘'으로 만들어낸 국민 승리의 역사다. 부모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고 교육은 개인의 성공이면서 국가 발전의 길이 됐다.
세계적인 교육열이 이룬 이 자랑스러운 성취는 세계 속의 꿋꿋한 우리와 오늘의 첫걸음이었다. 앞으로도 그럴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을 잘 키우고 있는가. 아니면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데 익숙해져 있는가.
승자독식의 시대, 인공지능(AI) 시대는 다시 한번 묻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의 상당 부분은 지식을 습득하고 기억하며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AI는 인간보다 훨씬 더더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몇 초 만에 자료를 검색·정리하고 글과 프로그램까지 만들어낸다. 이대로 간다면 지식은 물어보는 것이라고 정의가 바뀌는 오늘이다.
세계 책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 2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효동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독서를 하고 있다. © 뉴스1 김영운 기자
그렇다면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AI보다 더 많이 외우게 하는 교육으로 AI 시대를 이길 수는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답을 기억하는 능력보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보다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창의성, 협업, 책임감, 도전정신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 AI 시대가 역설적으로 더욱 인간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이유다. 학력은 높아졌는데 왜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하는가. 대한민국에는 대학 졸업자가 넘쳐난다. 그런데 기업은 끊임없이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교육이 산업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보다 학위와 입시를 중심으로 운영돼 온 결과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10년 넘게 경쟁하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교육의 목적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인가.
대학 입학은 교육의 결승점이 아니라 인생을 준비하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대학의 위기 시대다. 학위를 주는 기관에서 능력을 키우는 기관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곳에서 새로운 지식과 산업을 만드는 곳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상아탑을 넘어 기업이 필요한 역량을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학생은 학교와 산업 현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직업교육 역시 대학 교육보다 낮은 단계라는 오래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자가 존중받고 숙련이 자산이 되는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서 산업 경쟁력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AI를 금지할 것인가, 함께 생각하게 할 것인가. 교육 현장에서는 AI를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AI를 못 쓰게 하는 것이 교육인가, 아니면 AI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인가.
계산기가 등장했다고 수학이 사라지지 않았고 인터넷이 등장했다고 교육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의 수준은 더 높아졌다.
AI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사용하게 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AI에 생각을 통째로 맡기면 결과물은 좋아질지 몰라도 인간의 사고력은 약해질 수 있다. 학생이 먼저 생각하고, AI와 비교하고, 오류를 찾아내고, 다시 자신의 판단으로 결론을 만드는 훈련이 필요하다. AI를 답안지가 아니라 사고의 파트너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지난달 2일 치러진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고3 학생이 문제를 풀고 있다. © 뉴스1 김영운 기자
시험도 바뀌어야 한다. 교육이 바뀌려면 평가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아무리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을 이야기해도 대학입시가 암기와 정답 찾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학교는 결국 시험에 맞춰 움직인다.
우리는 학생에게 창의적이 되라고 말하면서 하나의 정답을 요구하고, 도전하라고 하면서 실패하면 감점한다. 협업과 문제 발견을 강조하면서도 평가는 여전히 개인과 정답 중심이다. 앞으로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어떻게 생각했는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협력했는가, AI를 어떻게 활용했으며 최종 판단에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까지 평가해야 한다.
정답의 시대에서 과정과 판단의 시대로 평가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 교육정책도 정치에서 조금 멀어져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교육정책은 너무 자주 흔들린다.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뀌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해한다. 교육이 정치적 실험장이 돼서는 안 된다. 신념이 교육의 좌표가 돼서는 안 된다.
아이 한 명의 교육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들어간다. 정책 실패가 확인됐다고 몇 년 뒤 다시 고치면 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제도를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그 몇 년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아갈 시간은 100년인 시대이다.
국가가 교육에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품격 가운데 하나는 예측 가능성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교육의 큰 방향은 유지돼야 한다. AI·디지털 교육, 기초학력, 직업교육, 대학 구조개혁과 같은 핵심 과제는 5년이 아니라 20년을 보고 설계해야 한다. 결국 사회와 기술 환경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교육의 갈 길이 정해져야 한다.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9월 19~20일 열린‘LG 에이머스(Aimers) 해커톤’에 참가한 청년들이 인공지능(AI) 기술로 산업 난제를 해결하는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LG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교육의 품격은 아이를 어떤 인간으로 만드는가에 있다. 결국 교육의 품격은 좋은 대학에 몇 명을 보냈느냐로 평가할 수 없다.
학교를 나온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가. 실패하고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가.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리고 세상에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결국 시대가 변해도 기본적인 소양과 인간의 모습은 그 자리에 있다.
AI 시대에는 지식의 가격은 내려가지만 판단과 창의성, 책임과 신뢰의 가격은 오히려 올라갈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학교에서 끝나서도 안 된다. 20대에 배운 지식으로 60대까지 일하는 시대는 끝났다. 대학 졸업장은 교육의 종료증명서가 아니라 평생학습의 출발 증명서가 돼야 한다. 기업도 근로자의 재교육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보고, 국가도 학교교육과 직업훈련, 평생교육을 하나의 인재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이 기업을 만들고 사회를 만들며 결국 국가를 만든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산업국가를 넘어 품격 국가가 되고 싶다면 이제 교육의 목표부터 바꿔야 한다. 대학이 사라지는 내일도 쉽게 상상된다.
많이 가르치는 교육에서 제대로 생각하게 하는 교육으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교육에서 큰 꿈과 좋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으로. 정답을 찾는 교육에서 미래를 만들어내는 교육으로. 성공의 의미를 가치와 도덕으로 다시 세우는 교육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나라라면 이제 세계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품격이고,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K-문명적 국가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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