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한텐 주지 못하지만"…이태원 유가족이 차린 '보랏빛 밥상'

사회

뉴스1,

2026년 October 16일, PM 05:32

16일 이태원참사 4주기를 맞이하여 유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현대적선빌딩 별들의 집에서 직접 만든 주먹밥·국 등 점심식사를 청년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2026.10.16 © 뉴스1 이종덕 기자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이태원 참사 추모·소통 공간 '별들의 집'. 며칠 동안 정성껏 준비한 주먹밥과 유부초밥, 깍두기 등이 식탁에 놓였다.

이날 청년들의 위해 밥상을 차린 이들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다. 참사 4주기를 앞두고 지난 4년간 곁을 지켜준 청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별들의 집에서 '보랏빛 밥상' 행사를 열었다. 유가족들이 청년들에게 전한 초대의 말은 "얘들아 밥은 먹고 다녀야지"였다. 유가족 20명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 청년 등 100명 이상의 손님을 맞았다.

유가족들이 청년들에게 음식을 대접한 것은 올해로 3년째. 2024년에는 샌드위치를, 지난해에는 비빔밥을 차려줬다. 해마다 10월이면 청년들을 위해 밥상을 마련하고 있다.

고(故) 이남훈 씨의 어머니 박영수 씨는 이틀 전부터 직접 깍두기를 담그고 고추다대기를 만들었다. 참사 이후 2년가량 전철이나 길에서 청년들만 마주쳐도 마음이 아팠던 그였다.

박 씨는 2024년 처음 청년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준 뒤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그는 "내 아이한테 주지는 못하지만 다른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며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아이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다는 마음이 제일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 유현주 씨의 아버지 유현우 씨도 같은 마음이었다. 유 씨는 "이렇게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자식처럼 생각하며 마련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고 진세은 씨의 고모 진창희 씨는 이날 밥상을 차리기 위해 대전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진 씨는 "청년들에게 집밥을 먹이고 싶었다"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다음에도 밥상을 차리고 싶어진다"고 했다.

16일 이태원참사 4주기를 맞이하여 유가족들이 서울 종로구 현대적선빌딩 별들의 집에서 주먹밥·국 등 청년들에게 제공할 음식을 직접 만들고 있다. 2026.10.16 © 뉴스1 이종덕 기자

추모대회 넘어 밥상으로…청년들과 나눈 안부
이날 보랏빛 밥상을 찾은 이들 중에는 참사 직후부터 유가족들과 인연을 쭉 이어온 청년들도 있었다.

김진서 씨(29·여)와 노서영 씨(30·여)는 참사 직후 추모대회에 혼자 참석하기 어려워하는 청년들을 모아 함께 현장을 찾으며 유가족들과 인연을 맺었다.

김 씨는 "참사 유가족과는 대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지, 계속 몇 년이 지나서 슬퍼만 하면 되는 건가"라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나 추모대회와 달리 식사 자리에서는 웃으며 일상을 나눌 수 있다"며 "유가족들이 먼저 마련한 밥상에서 연대감을 느낀다"고 했다.

김태현 씨(22·남)와 김수환 씨(25·남)도 밥상을 찾았다. 광주에서 온 김수환 씨는 "매일 기억하지는 않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이 난다"며 "행사가 열리면 되도록 빠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식탁에는 웃음이 이어졌지만, 눈물을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고 채현인 씨의 어머니 강현순 씨에게 청년들을 위해 밥을 차리는 이유를 묻자 "엄마의 마음으로 온 거죠. 그런 거죠 뭐"라며 애써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식사를 마친 청년들이 하나둘 돌아가자 유가족들은 이들을 안으며 배웅했다. 유가족들은 내년 10월에도 청년들을 위한 보랏빛 밥상을 차릴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moveg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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