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주택조합 조합원인데, 제 이름으로 소장이 왔습니다"[돈분쟁해결소]

사회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0일, AM 11:01

경제뉴스 속 사건들은 남의 이야기 같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돈분쟁해결소’는 실제 피해 사례들을 재구성한 사건을 통해 ‘내가 당사자라면?’이라는 질문에 답하며 돈을 둘러싼 법적 쟁점과 현실적인 대응법을 함께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60대 A씨가 정비업체로부터 조합 채무를 갚으라는 소장을 받고 식탁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60대 A씨가 정비업체로부터 조합 채무를 갚으라는 소장을 받고 식탁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 60 대 A 씨는 20 년 넘게 살아온 다세대주택이 가로주택정비사업 구역에 묶이면서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 이웃들과 함께 조합을 꾸려 새 아파트를 짓자는 말에 동의서를 냈고 , 총회에도 몇 번 참석했습니다 .

하지만 공사비가 치솟고 시공사와의 협상이 틀어지면서 사업은 2 년 넘게 멈춰 섰습니다 . 조합이 정비업체와 설계사무소에 미뤄 둔 용역비가 수억 원에 달한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급기야 A 씨 앞으로 소장이 날아왔습니다 . 정비업체가 조합뿐만 아니라 조합원 수십 명을 상대로 “ 조합의 채무는 조합원이 책임져야 한다 ” 며 각자 수천만 원씩 갚으라고 청구한 것입니다 . 소장에는 “ 조합 정관에 조합원이 사업비를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 는 근거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

- 조합원이면 조합 빚을 나눠 갚아야 하는 게 맞나요 ? 이름이 ‘ 조합 ’ 이잖아요 .

△이름 때문에 생기는 가장 흔하고 큰 오해입니다 . 우리가 흔히 아는 민법상 조합 , 즉 몇 사람이 돈을 모아 동업하는 형태의 조합은 조합원이 조합의 빚을 직접 책임집니다 . 하지만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은 이름만 ‘ 조합 ’ 일 뿐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

소규모주택정비법 ( 제 23 조 제 8 항 ) 은 조합을 법인으로 규정하며 , 법에 없는 사항은 민법 중 사단법인 규정을 준용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 동업 관계가 아니라 사단법인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 법인이라는 것은 조합과 조합원이 별개의 인격체라는 의미입니다 . 주식회사의 빚을 주주가 갚지 않고 사단법인의 빚을 회원이 갚지 않듯 , 조합의 빚은 조합의 빚이지 조합원 개인의 빚이 아닙니다 . 따라서 ‘ 조합원이니 당연히 연대책임을 져라 ’ 는 주장은 출발부터 틀린 말입니다 .

-그런데 정관에는 ‘ 조합원이 사업비를 부담한다 ’ 고 되어 있다는데요 ?

△정관에 그런 조항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조합원은 관리처분계획과 총회 결의를 거쳐 분담금을 납부하고 조합은 그 돈으로 용역비와 공사비를 치릅니다 . 하지만 이는 조합원이 ‘ 조합 ’ 에 돈을 낼 의무일 뿐 , 외부 정비업체가 조합원에게 직접 받아 갈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

대법원 역시 같은 입장입니다 . 재개발조합이 좌초되어 설립 인가가 취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관 조항만으로 조합원에게 남은 채무를 직접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 조합원의 부담금 채무는 총회에서 자산과 부채를 정산하여 각자 얼마씩 부담할지 결의할 때 비로소 확정되기 때문입니다 . 가로주택조합 역시 도시정비법 규정을 준용하므로 동일한 법리가 적용됩니다 . 즉 , 총회 결의가 없었다면 정비업체가 A 씨에게 직접 돈을 받아 갈 법적 근거는 없습니다 .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조합원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게 되나요 ?

△크게 두 가지 경우입니다 .

첫째 , 총회에서 ‘ 채무 분담 결의 ’ 를 한 경우입니다 . 조합원 총회에서 ‘ 남은 빚을 조합원이 얼마씩 나눠 부담한다 ’ 고 의결하면 그때부터는 개인의 채무가 됩니다 . 사업이 어려워질수록 총회 안건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시공사나 정비업체가 사업에 깊이 개입하는 경우 법적 의미를 잘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이러한 결의에 찬성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실제 현장에서 종종 벌어집니다 .

둘째 , 개인적으로 ‘ 연대보증 ’ 을 선 경우입니다 . 조합장 등 임원이 조합의 대출이나 용역 계약에 보증을 섰다면 그 책임은 법인격과 무관하게 개인에게 고스란히 남습니다 . 만약 D 씨가 평조합원이고 보증을 선 일도 없다면 이 두 가지 경우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

- 당장 소장을 받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 그리고 이 빚은 결국 어떻게 처리되나요 ?

△ 먼저 소장을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 아무리 터무니없는 청구라도 기한 내에 답변서를 내지 않으면 상대방의 주장대로 판결이 확정될 수 있습니다 . 답변서에는 ‘ 조합이 법인이라는 점 ’ 과 ‘ 조합원에게 직접 책임을 지울 근거인 총회 결의나 연대보증이 없었다는 점 ’ 을 분명히 적어 내면 됩니다 . 아울러 조합에 총회 의사록과 계약서 열람을 요구해 실제로 채무 분담 결의가 있었는지 , 누가 보증을 섰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비슷한 소장을 받은 이웃 조합원들과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

그다음의 근본적 해결이 더 중요합니다 . 조합의 빚은 조합 안에서 끝내야 합니다 . 조합은 법인이므로 남은 재산보다 빚이 많으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할 수 있고 , 민법상 사단법인 규정이 준용되므로 청산 단계에서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것이 확실해지면 오히려 법적으로 파산을 신청해야만 합니다 .

파산이 선고되면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조합 재산을 정리해 채권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절차가 끝나면 조합은 소멸합니다 . 파산관재인 역시 총회 결의 없이는 조합원에게 함부로 돈을 걷을 수 없습니다 . 조합원 입장에서는 이것이 ‘ 언제 내 이름으로 빚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르는 ’ 불안한 상태를 끝내는 가장 확실한 출구입니다 . 만약 조합 집행부가 파산을 피하려고 머뭇거린다면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파산 신청을 결의하도록 압박할 수 있습니다 .

소규모 정비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없이 조합설립인가만으로 빠르게 시작할 수 있어 전국적으로 급증했지만, 최근 공사비 급등과 금리 인상으로 멈춰 선 현장도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멈춘 사업의 빚이 어디로 향하는지 조합원들은 대개 잘 모르고 일부 업체들은 이 빈틈을 노려 조합원 개인을 압박하는 무리한 소송을 제기하곤 합니다.

이름이 ‘조합’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조합의 빚은 조합의 파산으로 정리하면 조합원이 별도의 채무를 지지 않습니다. 다만 명심할 점은 하나입니다. 총회 안건에 손을 들기 전에, 그 안건이 내 이름으로 빚을 떠안게 만드는 ‘채무 분담 결의’는 아닌지 반드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 (사진=이데일리 DB)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 (사진=이데일리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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