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관 아리셀 대표. 2024.8.28 © 뉴스1 이재명 기자
23명이 사망한 '아리셀 참사'와 관련해 기소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4년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날 선고를 지켜본 유가족과 노동·시민단체는 분통하고 억울한 심정을 밝히며 사법부를 규탄했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20일 오전 10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박 대표의 아들인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의 징역 7년과, 임직원들의 금고·징역형의 집행유예, 아리셀 법인의 벌금 8억 원도 함께 확정됐다.
1심에서는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박 대표와 박 총괄본부장은 2심에서 대폭 감형이 이뤄졌는데, 이 같은 2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을 판단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박 대표가 경영책임자로서 법상 의무와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경영책임자등을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형식상의 직위·명칭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 전반을 총괄할 권한과 책임이 있고 사업의 조직, 인력, 예산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안전보건업무책임자)은 사업 또는 사업장의 안전·보건 업무 전반에 관해 사업총괄책임자로부터 그에 준하는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아 이를 총괄하면서 조직, 인력, 예산에 대해 배정·편성받은 범위 내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전보건업무책임자로 인정되는지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이런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없다면 사업총괄책임자가 단독으로 '경영책임자등'으로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과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판단했다.
또 특정 사업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사업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관점에서 결정권 행사가 필요한 부분은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단독으로 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있더라도 여전히 사업총괄 책임자가 경영책임자로서 의무를 부담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서 정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 의무의 기준도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 평가 절차가 마련됐더라도, 그 절차의 실질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규정한 업무절차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업무절차 마련 의무'가 이행됐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시행령 단서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 평가를 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절차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직접 실시하거나 실시하도록 해 실시 결과를 보고받은 경우에는 의무가 이행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 요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의무 이행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리셀의 경우 위험성 평가 절차 폭발·화재 위험이 있는 물질인 리튬을 취급하는 사업장 특성이 구체적으로 고려되지 않았고, 2023년부터는 위험성 평가도 실시하지 않았다며 의무가 이행됐다고 보지 않은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아리셀 산재 피해 유가족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법원 선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대법원은 이날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26.10.20 © 뉴스1 김도우 기자
2심 감형의 주요 이유가 된 비상구 관련 혐의에 대해선 대법원이 별도 판단을 하지 않았지만,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2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앞서 1심은 비상구 '설치' 의무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비상구·비상통로 '유지' 의무 위반은 인정했다. 반면 2심은 "1층에 비상구가 있는 이상 2층에 별도로 설치할 의무가 없고, 비상통로는 개념과 설치 기준을 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 폭발로 대형 화재가 일어나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박 대표 등은 이 사고와 관련해 유해·위험 요인 점검 미이행,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 미구비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은 박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위반 사건에 대해 내려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박 본부장에게도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임직원들 4명도 금고 1~2년, 징역 2년을, 법인 아리셀은 벌금 8억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은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박 본부장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임직원들은 무죄 또는 징역·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아리셀 법인의 벌금 8억 원은 유지됐다.
한편, 아리셀 참사대책위원회·산재피해가족협의회는 선고가 끝난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故) 엄정정씨의 어머니인 이순희 씨는 "사람을 23명이나 죽인 살인기업을, 살인자를 살려둘 수 있느냐"며 "다 같이 한통속이 돼서 이렇게 차별할 수가 있나. 너무 원통하다"고 말했다.
신하나 아리셀 법률지원단 단장 변호사는 "일반인 상식으로 누구나 공장안에서 불나면 도망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응당 그래야지'라고 해석하는 게 어렵냐"면서 "오늘 어떠한 이유도 설명받지 못했기 때문에 판결문의 법리에 중요한 오해와 왜곡이 있다면 재판소원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pej86@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