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앞 간판(사진=연합뉴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가 이사의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영풍이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영풍이 아닌 고려아연에 돌아가는 구조다.
재판부는 이사들에게 경영상 폭넓은 재량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법령을 위반하지 않고 충분한 정보를 검토해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렸다면 그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은 이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역시 이러한 경영판단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사진이 영풍·MBK 측의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고 외부 법률자문과 법원의 가처분 신청 사건 결정 등을 검토한 뒤 일정 비율 할증에 의한 가격 조건과 자금조달 방안을 전제로 공개매수를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자사주 취득에 관한 법적 제한을 위반하지 않았고 의사결정 과정도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따라서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를 다해야 할 의무(선관주의의무)나 회사의 이익을 위해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영풍이 제기한 법령·정관 위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영풍이 문제 삼은 특정 목적 준비금이 상법상 자사주 취득 재원을 제한하는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준비금 사용을 제한한 정관 규정 역시 자사주 취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봤다.
영풍은 2024년 11월 고려아연 이사들이 무리하게 자사주를 사들여 회사에 6732억 990만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고려아연은 시가 56만원 안팎이던 주식을 주당 89만원에 공개매수해 총 204만 30주를 취득했다.
영풍은 공개매수와 유상증자에 반대한 장형진 영풍 고문과 이사회에 불참한 김우주·성용락 이사를 제외한 10명을 상대로 책임을 물었다.
선고 이후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고려아연을 사금고화하고 막대한 채무를 떠넘긴 위법적 경영 행위가 ‘이사의 재량’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며 “훼손된 주주가치와 파괴된 주주권리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은 “MBK와 영풍은 ‘적대적 M&A’를 위해 당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방해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묻지마 식’ 소송 남발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뉴시스)
한국기업투자홀딩스는 2024년 11월 고려아연이 이사회 결의 없이 한화 주식 543만 6380주(지분율 7.25%)를 저가에 처분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지난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주당 매각가는 2만 7950원, 총 매각대금은 1519억원이었다.
재판부가 원고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MBK 측이 요구한 2759억 원과 지연이자를 지급요구와 약 304억 원의 예비적 청구는 기각됐다.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현재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각각 경영하고 있다. 최윤범 회장이 2022년 취임한 이후 양측이 고려아연 지분을 경쟁적으로 매입하면서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