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 발생한 살인 사건 중 절반 이상이 가족·친인척을 대상으로 한 범행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간 불화나 경제적 갈등이 살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집안 문제'로 치부돼 가려지는 위험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비극을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체 살인사건 피의자와 가족·친인척 관계인 피해자의 비율은 2023년 55.0%, 2024년 47.5%, 2025년 51.0%로 집계됐다.
최근에도 가족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강서구에서는 친모를 살해하고 자진 신고한 딸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9월 충남 천안시에서는 딸이 친부를 살해했다. 지난 2월 경기 남양주시에선 남동생이 친누나를 숨지게 했다.
세 사건 모두 범행 이전부터 가족 간 불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서구 사건 피의자는 평소 어머니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 지르거나 욕설하는 등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천안 사건은 딸이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투자했다가 실패하면서 부녀간 금전 갈등이 불거졌고, 남양주 사건 역시 함께 거주하던 남매가 방 사용 문제로 자주 다퉜다.
각종 범죄 통계를 보면 존속 살해가 전체 살인 통계에 유의미한 수준으로 반영되고 있다. 가족 간에는 경제적 이해관계나 생활·돌봄 문제 등 일상에서 얽혀 있는 부분이 많아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 또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거나 서로의 생활을 잘 알고 있어 범행 기회가 형성되기 쉽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살인은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감정적 거리가 멀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범죄"라며 "가족은 갈등이 발생할 기회도 많고 물리적으로 범행이 일어날 기회도 많아 방아쇠 역할을 하는 사건이 생기면 격정적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족 간 갈등이 반복되더라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가족의 처벌이나 관계 악화를 우려해 경찰 신고를 주저하거나 집안의 문제를 외부에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내부의 문제는 가족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도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가족 구성원이 적은 가정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말하지 않는 이상 제3자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기보다 병원이나 사회복지시설 등 피해자와 접촉할 기회가 있는 외부 기관을 통해 위험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 수 있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아동과 60세 이상 노인 등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은 직무 수행 중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김연수 동국대 범죄학과 교수는 "노인이나 아동 같은 경우에는 법에 의해서 신고를 하게 해놨지만 일반 성인의 경우에는 여전히 개입이 쉽지 않다"며 "의료 시설과 사회복지시설, 주변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통상 남의 가정사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한계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된 이후 과거 신고 이력과 갈등의 반복 여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가정폭력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될 수 있지만, 신고 때마다 출동 경찰관이 달라지면 이전의 갈등이나 폭력 이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반복 신고 가정에 대한 위험도 평가를 강화하고 출동 경찰관이 과거 신고·조치 내역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와 활용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또 최초 신고 단계에서도 재발 가능성을 살피고 피해자에게 상담·보호 절차를 적극적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신고가 접수돼 출동하는 경찰관들이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이전 신고 이력을 놓치기도 한다"며 "그 이력만 잘 관리돼도 반복 신고 여부와 피해자 상황을 종합해 강제 개입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 간 범행은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폭력적인 성향 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또다시 보복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 음주 문제 등 폭력의 원인에 맞는 치료를 연계하는 동시에 재범 위험이 높은 가해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교수는 "가해자를 형사 처벌한다고 해서 폭력적인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형을 마친 후 자신을 신고한 가족에게 보복할 수도 있다"며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예를 들어 음주 문제로 가정 내 갈등이 발생한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이나 치료가 더 필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ug@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