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무죄·행정 패소한 녹십자…헌재서 '판결 이유' 공방

사회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3일, PM 05:42

[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에서 엇갈린 판결을 받은 녹십자가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의 첫 공개변론이 열렸다. 녹십자 측은 “대법원이 판결이 엇갈린 이유를 밝혔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법리 문제가 아닌 사실 평가의 차이일 뿐”이라고 맞섰다.

헌법재판소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녹십자 백신 입찰담합 과징금 관련 재판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녹십자 백신 입찰담합 과징금 관련 재판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대심판정에서 녹십자가 제기한 재판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지난 3월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첫 사건이다. 대법원이 행정소송 상고를 별도 이유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한 것이 녹십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는지가 쟁점이다.

앞서 녹십자는 질병관리청(당시 질병관리본부)이 2017년 4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발주한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 입찰에서 도매상을 들러리로 세워 낙찰받았다는 이유로 2023년 8월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20억3500만원을 부과받았다.

녹십자는 같은 입찰담합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한편,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도 불복해 취소소송을 냈다. 두 재판은 담합으로 경쟁이 제한됐는지를 두고 엇갈린 판단을 내렸다.

형사재판에서는 서울고법이 2024년 7월 경쟁제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이를 확정했다. 반면 행정소송에서는 서울고법이 지난해 10월 경쟁제한성을 인정해 녹십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올해 2월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으로 판결을 확정했다.

◇녹십자 측 “엇갈린 판결 이유 밝혀야”

청구인인 녹십자 측 대리인 법무법인 율촌은 대법원이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확정한 지 약 두 달 만에 반대 결론의 행정재판도 그대로 확정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행위를 두고 판결이 달라졌는데도 이유를 밝히지 않아 당사자는 물론 대리인조차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청구인 측은 법원이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검토하고 판단 이유를 제시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같은 사안에서 형사와 행정 판결이 정반대로 나온 만큼 대법원이 심리를 이어갔어야 할 ‘중대한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서형석 율촌 변호사는 “동일 사안에서 모순된 사실관계가 각각 확정된 것은 그 자체로 어느 하나는 사실오인과 잘못된 법령 적용이 있는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그 이유가 제대로 설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법리 충돌 아닌 사실 평가 차이”

반면 이해관계인인 공정위 측은 두 판결이 같은 법리를 적용했지만 사실관계를 달리 평가해 결론이 엇갈렸다고 반박했다. 백신 공급확약서 발급 가능성과 담합이 낙찰가격 등에 미친 영향을 다르게 판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은 증명 기준도 달라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대리인인 박시준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는 “심리불속행은 아무런 심사를 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대법원이 원심판결과 상고이유 등을 모두 살펴봤고 녹십자 측도 상고심에서 형사판결을 제출해 충분히 의견을 냈다고 강조했다.

또 형사 무죄 확정판결이 행정소송 원심 선고 49일 뒤에 나왔다는 점을 들어 “후발적으로 선고된 판결이 원심 판결에 존재하지도 않던 하자를 소급해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론의 차이만을 이유로 재판 취소를 허용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또 하나의 상소심이 돼 심급 제도와 재판의 법적 안정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측의 변론을 들은 재판관들은 형사와 민사·행정재판의 결론이 엇갈릴 때마다 심리불속행을 할 수 없는 것인지, 어떤 경우에 판결 이유를 밝혀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물었다.

청구인 측은 “의료과실처럼 과학적 입증이 어려운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같은 사실관계에 법적 개념을 적용하는 문제”라며 “모든 판단을 세세하게 설명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가 ‘이래서 달라졌구나’ 이해할 정도로 한두 줄이라도 기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같은 사실관계와 증거를 두고 경쟁제한성 판단이 엇갈린 만큼 대법원이 판단 기준을 정리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쟁제한성이 사실 판단인지 법률 판단인지를 놓고도 질문이 이어졌다. 공정위 측은 “경쟁제한성에 관한 법리는 이미 확립돼 있으며 이 사건은 사실 판단의 문제”라고 답했다. 반면 녹십자 측은 “경쟁제한성은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하는 법적 개념”이라며 대법원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헌재는 양측 주장과 참고인 진술 등을 검토해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판결이 재판청구권을 침해했는지 판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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