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무죄인데 행정재판서 패소…재판소원 '4시간' 마라톤 공개변론

사회

뉴스1,

2026년 October 23일, PM 08:19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압수수색 영장 미교부' 재판소원 공개 변론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2026.10.21 © 뉴스1 오대일 기자

헌법재판소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녹십자 과징금' 사건의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녹십자 과징금 사건은 지난 3월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된 뒤 헌재가 처음으로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정식 심리에 들어간 사건이다.

이날 녹십자가 청구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해관계인으로 참여했고 변론은 4시간 동안 이어졌다.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에 재판소원
앞서 녹십자는 질병관리청이 2017년 4월~2019년 1월 발주한 HPV4가(가다실) 백신 구매 입찰 3건에서 백신 도매상들을 들러리로 섭외해 입찰에 참여한 뒤 1순위로 낙찰받아 입찰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과징금 납부 명령을 받았다.

같은 행위를 두고 진행된 형사재판에서는 결론이 엇갈렸다. 녹십자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경쟁제한성과 직원들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반면 녹십자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녹십자는 서울고법이 형사 판결과 상반된 해석을 내린 데다 공동행위의 경쟁제한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월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불복한 녹십자는 지난 3월 이 사건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재판청구권, 재산권 등 침해를 주장하며 대법원을 상대로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이날 녹십자와 공정거래위원회 측이 각각 20분씩 변론했다. 녹십자 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율촌이, 공정위 대리인으로는 정부법무공단과 법률사무소 사헌이 참여했다.

변론 직후 정정미·오영준·조한창·김복형·정계선·마은혁·김형두 재판관이 양측에 질의를 이어갔다. 김진한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녹십자가 추천한 참고인으로서 변론에 참여했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압수수색 영장 미교부' 재판소원 공개변론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2026.10.21 © 뉴스1 오대일 기자

"재판청구권 침해" vs "심리 속행 사유 있는지 이미 판단"
녹십자 측은 "헌법상 재판청구권은 형식적 권리가 아닌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권리"라며 재판청구권을 침해당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은 경쟁제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법적 견해를 밝힌 이후 단 두 달 만에 경쟁제한성이 인정된다는 판결을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판결을 선고했다"며 "당사자로서는 모순된 판결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고 부연했다.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은 '원심 판결이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에 대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게 해석한 경우'에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녹십자 측은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전원합의체에 회부함이 타당하고 당사자에게 최소한 변론의 기회가 부여돼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정위 측은 "사건 본질은 형사 판결과 행정 판결의 결론이 다르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차이가 원심 판결을 파기해야 할 헌법상·법률상 하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구인(녹십자)은 대법원이 아무런 실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했다고 주장하지만 심리불속행 제도는 아무런 심사를 하지 않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대법원은 먼저 상고 이유를 살펴 심리 속행 사유가 있는지 판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이후의 심리를 속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정위는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는 사실이 행정재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형사재판은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하지만 행정재판은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절차로, 증명 구조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공정위 측은 "오직 결론의 차이만을 이유로 재판 취소를 허용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또 하나의 상소심이 되어 심급 제도와 재판의 법적 안정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상환 헌법재판소장과 정형식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 7인은 각각 10~30분 동안 녹십자와 공정위 측 대리인에게 질의를 이어갔다.

참고인으로 참여한 김진한 변호사는 "심리불속행 제도에 대한 헌법적 통제는 대법원의 최고 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해 모든 사건에서 이유 제시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는 "법률상 심리불속행 제외 사례 준수 여부와 당사자의 절차적 기본권 보장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최소한의 이유 제시'를 요구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헌법적 형량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doo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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