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오늘] “죽었다던 군인이 살아왔다”…43년 만에 밝혀진 기막힌 사연

사회

이데일리,

2026년 October 24일, AM 12:01



[이데일리 남소연 기자] 1994년 10월 24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믿기 힘든 만남이 이뤄졌다.

6·25전쟁 중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남성이 43년 만에 가족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의 모습으로 떠났던 그는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64세 노인이 돼 있었다.

6·25전쟁 이후 북한에 억류됐다가 탈출해 고국으로 돌아온 첫 국군포로, 조창호씨의 이야기다.

(사진=유튜브 'KBS히스토리' 캡처)
(사진=유튜브 'KBS히스토리' 캡처)
조씨는 6·25전쟁에 참전하던 중 중공군의 포로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갔다.

군에서는 조씨를 전사자로 처리했고, 국립묘지에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위패까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조씨는 목숨을 건 탈출 끝에 43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씨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한이 바로 내 집이다”며 오랜 세월 귀환만을 꿈꿔온 절절한 심경을 전했다.

가족들은 믿기 어려운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죽은 줄만 알았던 가족이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과 함께 43년이라는 세월이 남긴 상처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병실에 누워있는 조씨를 마주한 그의 동생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살아있다니 다행이다. 얼마나 그리웠는데”라며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조씨 역시 오랜 세월 떨어져 지낸 동생들을 바라보며 “말이 안 나온다”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스무 살 대학생이 전쟁터로…가족과 43년 생이별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조씨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고, 이듬해 인제지구 전투에 참여했다. 교육자의 꿈을 키우던 한 청년의 삶이 전쟁으로 송두리째 바뀐 순간이었다.

포병 관측장교로 최전방에서 복무하던 그는 퇴각 명령을 받고 후퇴하던 중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잠시 들른 민가가 중공군의 임시 막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들어갔다가 포로로 붙잡혀 북한으로 끌려간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가족과 4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생이별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조씨는 송환되지 못했다.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혀 교화소에 수감된 그는 포로 송환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조씨는 당시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1952년 월남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교화노동형을 선고받아 13년간 교도소에서 생활했고, 1964년 교도소에서 나와 지하 200m에서 강제노역을 했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오랜 탄광 노동으로 규폐증을 앓기도 했다. 규폐증이란, 탄광이나 광산 등에서 오랜 기간 규소 성분의 먼지를 들이마셔 폐 조직이 굳어지고 호흡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건강은 갈수록 나빠졌지만, 남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그는 “내가 묻힐 땅은 이북이 아니라 남한이라는 생각으로 압록강 주변에 살면서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압록강 건너 목숨 건 탈출, 국군포로 송환 촉구 활동 매진하기도

그렇게 조씨는 다시 탈출을 준비했다. 중국과 가까운 압록강변으로 거처를 옮긴 뒤 약 2년 동안 탈출 기회를 엿봤다. 이미 60대 중반의 나이에 건강까지 좋지 않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마침내 1994년 10월 초, 조씨는 북한 경비병들의 감시를 피해 작은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발을 디뎠다. 이후 남한으로 향할 배를 어렵게 구해 다시 바다로 나섰다.

조씨는 같은 달 23일 새벽 1시쯤 군산항 서남쪽 약 80마일 해상에서 표류하다가, 조업 지도 중이던 수산청 소속 어업지도선에 발견돼 구조됐다.

구조 당시 그는 자신의 신분을 ‘43년 만에 북한에서 탈출한 전직 국군 소위’라고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튿날인 24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그의 귀환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서 조씨의 사연은 전국에 알려졌다.

이 때, 또 한 번의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조씨가 병실을 찾은 국방부 장관에게 거수경례하며 43년 만의 귀환을 신고한 것이다. 그해 11월 조씨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정식 전역식을 갖고 중위로 전역했다.

(사진=유튜브 'KBS히스토리' 캡처)
(사진=유튜브 'KBS히스토리' 캡처)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온 기쁨 속에서도 북한에 남겨진 국군포로들에 대한 걱정은 떨쳐내지 못했다. 특히 국군포로 송환에 소극적이었던 정부를 향해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과거 KBS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람들(국군포로들) 지금 우리 기억 속에서 왜 다 사라졌는가. 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는데, 왜 우리 국가는 그 사람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가”라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조씨는 북한에 남겨진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촉구하는 활동에 힘을 쏟았다. 2005년에는 미국 의회를 찾아 북한에서 겪은 경험을 증언하며 국군포로 송환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오랜 강제노역과 수용소 생활로 나빠진 건강은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조씨는 귀환한 지 12년 만인 2006년 11월 19일,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주관하는 첫 ‘향군장’으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한편, 조씨의 귀환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모두 80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돌아왔다.

올해 8월 기준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귀환 국군포로 80명 가운데 생존자는 5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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