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접근금지 받아도 살지 못했다…'보호의 골든타임' 어디서 끊겼나

사회

뉴스1,

2026년 October 27일, AM 05:50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 2022년 10월 충남 서산.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여성 A 씨는 이혼을 요구하며 경찰에 6차례 신고하고 법원에서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남편이 접근금지를 어기고 찾아왔을 때 경찰은 직접적인 폭력이나 위협이 없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했다. 당시 경찰은 폭행 피해가 심하지 않아 구속영장을 신청할 사안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A 씨는 남편에 대한 퇴거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날 자신의 일터에서 보복 살해당했다.

#. 2024년 4월 경기 고양.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받은 50대 남성이 별거 중인 아내 B 씨를 계속 찾아갔다. B 씨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가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격리하는 임시조치 5호를 신청했지만, 검찰은 기존 임시조치 연장만 청구했다. B 씨가 남편의 집 출입을 허락했고 직접적인 폭력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검찰이 유치를 청구하지 않은 지 6일 만에 B 씨는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숨졌다.

#. 2025년 6월 대구. 스토킹·교제폭력 가해자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가해자가 수사에 응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C 씨에게는 스마트워치와 지능형 폐쇄회로(CC)TV가 지급됐고 약 2주간 민간경호도 제공됐다. 이후 접근·연락금지 잠정조치까지 내려졌지만, 민간경호가 끝난 지 약 4주 뒤 C 씨는 집에 침입한 가해자의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세 사건에서 보호체계가 멈춘 지점은 서로 달랐지만,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반복되어온 위험과 그 신호를 간과했다는 사실은 같다. 결국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격리하지 못한 채 피해자는 살해됐다.

서산에서는 반복 신고와 접근금지 위반 이후 경찰이 가해자를 귀가 조치했고, 고양에서는 검찰(현 공소청)이 유치장 등 유치를 청구하지 않았다.대구에서는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했고, 이후 스마트워치와 민간경호, 접근금지 조치까지 시행됐지만 끝내 피해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실제로 접근금지 등 조치를 위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 위반 건수는 2023년 1157건에서 2024년 1395건, 지난해 2121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9월까지 2097건이 발생해 지난해 연간 건수에 육박했다.

아울러 가정폭력 가해자를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격리하는 '임시조치 5호' 신청은 증가하고 있지만, 유치 결정 건수는 신청 건수를 크게 밑돌고 있다.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임시조치 5호 신청은 2023년 436건에서 2024년 562건, 지난해 785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9월까지 954건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신청 건수를 넘어섰다. 반면 유치 결정은 지난해 385건에서 올해 9월까지 369건으로 집계됐다.

가해자에 대한 강제조치와 별개로 피해자에게 보호장치를 지급한 뒤에도 중대범죄가 발생했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10월 12일까지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피해자가 살해된 사건은 17건, 살인미수 피해를 입은 사건은 10건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경찰은 접근금지 등 보호조치 이후 살인·살인미수·상해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한 사건을 별도로 집계하지 않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반복 신고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바라보는 경찰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해도 위험성이 높아 보인다면 입건해 제대로 조사하고 잠정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이 두 번 신고하기도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여러 번 신고했다면 굉장히 위험한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위험성 평가 등 이미 마련된 절차가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가해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강제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접근금지를 위반하는 경우도 많은데 위반한 사람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접근금지 조치를 위반하면 구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가 누구인지 특정돼 있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구속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전자발찌를 채우는 등의 조치만으로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인신구속에 부담을 갖는다는 점은 알지만, 관계성 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쉽게 접근해 범행할 수 있다"며 "이러한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법원에서도 다르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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